광야에 선 인간 (2012.07.08 소식지)

작성자 : 라파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02 14:30:59    조회 : 473회    댓글: 0
「광야에 선 인간」
(송봉모, 바오로딸, 1998.)
 
“저는 세례도 받았고, 주일미사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나도 변한 게 없이 그대로이고.. 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가끔씩 교우분들로부터 듣게 되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에는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세례 받고 미사참례하는 것(외적인 의미에서)만으로는 도무지 달라지는 것도 없고 모르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무언가 확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하느님에 관한 것도 알쏭달쏭하고 생활도 그대로이고 믿음이 확 생겨나지도 않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고민을 갖게 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대단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변신’이 아니라 ‘변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갑자기 볼펜을 바꿨다고 해서 글씨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듯 외적인 의미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확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변화된 삶의 기준과 신앙의 은총이 변화를 가져오도록 이끌어주지만 그 또한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다가 약속된 자유의 땅으로 건너가면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백년간 이집트 땅에 속한 작은 민족으로 살다가 갑자기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40년간의 광야생활이었습니다.
40년이라는 것은 거의 한 세대가 태어나 죽는 일생의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오랜 시간 광야에서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 전체는 하느님 나라로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례를 받고 일생을 살아가는 신앙생활 전체는 어쩌면 이 ‘광야’에서의 삶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이 소책자는 우리의 인생이 광야와 같음을, 광야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 곳인지를 성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 주는 좋은 영성서적입니다. 광야에서는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내면의 욕망과 허물들을 비워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며 하느님 외에 의지할 곳이 없음을 깨닫는 심연의 공간입니다. 때문에 정화의 과정이고, 신비의 과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광야를 통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를 깨달을 때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자유도 함께 펼쳐질 것입니다.
 
제자: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스승: 보는 것이네.
제자: 무엇을요?
스승: 성공의 공허함을, 명예의 허망함을, 인간 노력의 허무함을.
제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비관이고 절망이네요.
스승: 아니지. 그것은 푸르른 창공으로 비상하는 독수리의 자유스러움이고 신명남이지.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