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마을, 도시에서 농심을 디자인하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7-19 12:06:31    조회 : 413회    댓글: 0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전환마을,

도시에서 농심農心 을 디자인하다

 

도시의 착취를 멈추자

“언제까지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서울 은평에서 만난 소란은 ‘착취’에 힘을 주어 말했다. 도시 곳곳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뤄지고 있고 지역활동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요즘, 도시는 어떤 ‘마을’을 만들어야 할까. 무엇보다 널뛰는 집값,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들썩이는 도시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고 뿌리를 내리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전환마을 은평’ 활동가 소란은 도시에서 에너지와 먹거리 전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결 해야만 한다는 의지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그 시작은 도시텃밭에서 시작되었다. 성폭력 가해자를 상담하는 일을 하며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던 건 땅에서 솟아나는 새싹과 풀이었다.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땅을 밟는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쉼이었다. 그 후 3년 동안 해외 전환마을(transition town)을 방문하며 퍼머컬쳐(Permaculture)와 전환운동을 몸으로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2014년, 그녀는 72시간 동안 진행되는 퍼머컬쳐학교를 열었다. 퍼머컬쳐는 농(農)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작업이다. 농사 기술 보다는 농업을 통한 자급과 살림살이의 전환에 목적을 두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전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들었고, 퍼머컬쳐학교는 4기를 거쳐 100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 되었다. 소란이 뿌린 퍼머컬쳐의 씨앗들은 전국으로 퍼졌다. 신촌, 영등포, 마포 성미산 마을, 강북 마을에서 전환마을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대안학교인 금산 간디학교에서는 농업과 생태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정식 교과를 퍼머컬쳐로 재편했다.

 

“도시에서 균열을 낼 수 있는 생태적 거점”
 

퍼머컬처는 마을로 확산되었고, 2015년에 ‘전환마을 은평’을 선언하게 된다. 그녀는 이 선언을 “도시에서 균열을 낼 수 있는 생태적 거점이자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2006년 영국 토트네스에서 시작된 전환마을은 전환을 ‘생활 전반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전환마을, 전환운동은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지역 탄력성을 회복하는’ 움직임이다. 또한 그녀는 도시에서 농촌의 착취를 멈추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어야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착한 소비도 생산을 해봐야지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전환마을 은평과 퍼머컬쳐학교 등에서 이뤄지는 활동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이다. 이들의 활동은 기존 시민단체가 하는 방식과 다르다. 단체 형태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조그마한 재능이라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가르치는 자로 세운다. 사람들이 이를 전수 받으면, 배운 자들이 수업을 여는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모호한 구조이다.


“회복 resilience이란 원래 있던 것을 발굴”하는 것이다. 토종씨앗 나눔 모임, 도시텃밭 경작자 모임, 마을식당 준비 등이 그저 ‘열린 공간’에서 이뤄졌다.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새로운 힘이 생겨난 것이다. 그녀는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공간과 거점을 일단 만들어 주면 관계에서 여러 시도가 일어난단다.


도시텃밭의 지속성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마을식당 ‘밥풀꽃’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얼굴 있는’ 음식들로 가득하다. “열무는 저희 집 마당에서 키운 거구요. 상추는 맹추네농장, 방울토마토는 은평문화예술회관옥상텃밭에서 온 거예요.”라고 말하며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마을에서 음식 솜씨 좋은 어르신들을 모셔와 일자리도 만들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조직틀을 갖추지 않고, ‘방식’만 협동조합으로 하기로 했단다. 서류더미와 서로를 지치게 하는 회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도시농업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그녀는 한살림에게도 몇 가지 역할을 주문했다. 우선 퍼머컬쳐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농지와 공간을 공유하고, 생산자와 만남의 장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농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예산과 기획 상의 문제로 밀어내지 않았으면 한단다. 더불어 느슨한 소모임이 열릴 수 있도록 “일단 공간”을 내주고, 다양성을 포괄하는 방향을 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 구조를 끝낼 수 있는, 그리고 도시에서 자립하기 위한 여러가지 실험을 진행 중인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자.

 


“환대하고 환대 받을 수 있는 곳”

 

 

@전환마을 은평 대표를 맡고 있는 소란

 

모심: 영국 토트네스 전환마을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셨다고 들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고, 은평에 어떤 것을 적용하고 싶나요?

소란: 외국의 경우 초기에 생태마을을 만든 건 68혁명 세대들이에요. 대안적 가치를 고민하면서 이러한 것이 다 채워져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생태마을이 생겼는데, 그때 기초가 되었던 것이 퍼머컬쳐에요. 사실 퍼머컬쳐를 잘 몰랐는데, 토트네스 갔을 때 확 알게 된 거예요. 토트네스는 68세대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고, 그 영향 때문에 마을 자체가 그들이 추구한 가치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 종교 단위들도 하나의 트러스트를 만들어서 마을을 지원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구요. 그래서 그런지 어떤 것들을 하려고 할 때 굉장히 힘이 많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환대하고, 환대 받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이미 가진 사람들이라 열려 있는 태도이고, 고민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하고 싶으면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요.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동참하겠다며 거리낌 없이 오는 것도 신기했어요. 그래서 ‘아,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고 나도 저 사람들처럼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든 거죠.

 

모심: 고향이 강화도라고 했는데 소란이 경험한 한국의 농촌과 토트네스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소란: 저는 부모님이 시골에 살고, 굉장히 어렸을 때 시골에 살다보니까 시골의 문제를 많이 느꼈어요. 남자 분들은 알콜중독으로 일찌감치 돌아가시고 …, 아니면 농약 같은 것 때문에 아프세요. 이런 일들이 일상적이고 분위기 자체가 패배감이 있어요. 자식들은 절대로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좋은 땅도 있고 오랫동안 관계 맺은 사람들도 있는데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거죠.

토트네스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더라구요. 그 곳에 살던 친구들이 어디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그 지역에 있는 학교에 왔다가 “여기는 살 만하구나”라고 하면서 터전을 잡는 경우도 많아요. 안착률과 귀농률이 굉장히 높은 거예요.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을 많이 한 거죠.

 

도시농업,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지 않는 구조


모심: 퍼머컬쳐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데요, 퍼머컬쳐는 어떤 개념이고,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나요?

소란: 퍼머컬쳐는 농사를 짓는 기술 중심이 아닌 ‘회복’과 같은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거예요. 회복 resilience란 원래 있던 것을 발굴한다는 개념이에요.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아도 마음 속에는 이러한 가치를 갖고 있는데, 이것을 농사 기술보다 더 강조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퍼머컬쳐 학교가 4기까지 진행 됐어요. 졸업생도 300여 명 돼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마을식당 <밥풀꽃> 앞에 붙여진 ‘자립자족 학교’ 포스터

 
모심: 퍼머컬쳐 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소란: 제가 퍼머컬쳐를 도시농업에 착안한 것은 도시 자체가 계속 농촌을 착취하는 구조이고, 한국은 특히 더 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도시가 자연을 품는 거점, 공유지가 사라지는 것은 계속해서 농촌을 더 착취하겠다는 뜻이에요. 도시에서 생태나 농업이 일상에서 다가오는 거점을 몇 군데 만들면 뭐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은평 ‘가령 텃밭’을 만들 때 퍼머컬쳐 형식으로 설계를 해보자는 제안이 있어서 5년에 걸쳐서 갈현텃밭을 만들었어요.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구조여야 돼요. 도시의 소비자 운동, 그 자체도 한계가 있어요. 착한소비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생산을 해봐야지 착한소비도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아요. 도시도 생산자가 되어야 해요. 좋은 먹거리를 먹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소비자들이 그냥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농산물이 어떻게 키워지는지 관심은 없는 듯 하구요. 소비자 운동을 좀 더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생산자화 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풀 투어(tour)와 풀 공부를 하는 모습 (출처: 전환마을 은평 페이스북)


모심: 도시의 자립, 소비자의 자립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환마을 은평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죠?

소란: ‘전환마을 은평’은 하나의 선언이에요. 어쨌든 도시에서 균열을 낼 수 있는 생태적 거점들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공간이 생겼으니까 그냥 놀러오세요”라고 하는거예요.

그렇게 하니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풍물패도 생기고,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종씨앗도 나누고 같이 농사를 짓는 거예요. ‘전환마을 은평’은 그냥 판만 깔아주는 거죠. 실제로 모두 조직할 수는 없어요. 소모임들이 연결되면 은평에서 조금 더 지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확산되는 전환마을, 전환운동

 

모심: ‘전환마을’이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적극적으로 전환운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 있나요?

소란: 일주일에 한 번씩 금산 간디로 가서 교사와 학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금산 간디학교 같은 경우에는 전환학교를 선언하고 전환마을짜지 확장해가려해요. 대안학교가 각자 학교가 가진 특징을 찾지 못해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특히 아이들이 졸업하고 난 뒤에 어떤 재생산을 해야 할지를 굉장히 고민을 했어요. 차라리 삶 자체를 다시 조직하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졸업생들이 마을의 플랫폼 형태를 만들거나 학교가 그러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인 거예요.
그래서 학제를 아예 퍼머컬쳐를 주교과로 하고 다른 수업도 재편하게 됐어요. 퍼머컬쳐에서 필요한 텃밭을 만들기 위한 수학을 하거나, 국어 시간에 퍼머컬쳐 책을 읽는 등과 같은 방식이에요. 비전력 학교나 야행에서 수렵 채집하는 것도 실험해보기도 하구요. 이를 2년 동안 준비하다 보니 학교를 마을로 확장하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해서 전환마을까지 확장이 된거죠. 올해는 전교사와 교직원이 함께 아일랜드 킨세일과 영국 토트네스와 같은 전환마을에도 가보기로 했어요.

 

모심: 신촌에서도 전환마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전환마을이나 비슷한 취지로 움직이는 한국의 흐름이 금산 이외에 또 있나요?

소란: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하고 있어요. 하자 학교를 중심으로 카페, 식당을 전환운동으로 바꾸어 마을로 확장하려고 해요. 성미산 마을도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에 삶을위한교사연대에서도 전환마을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구요. 또 가을에 토트네스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기로 했어요. 올해 이러한 움직임을 연결해서 전환마을의 흐름을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모심: ‘전환마을 은평’과 도시텃밭이 연결되고 확장된 대표적인 공간이 마을식당 <밥풀꽃>이라고 생각해요. <밥풀꽃>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소란: <밥풀꽃>은 소비자, 생산자, 활동가가 분리되지 않는 모호한 공간이길 바랬어요. 또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 자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을 발굴하는 거예요. 토트네스가 잘 되었던 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자원과 사람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밥풀꽃을 만들기 전에는 “도시농부가 몇 명이나 될까?”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농사를 짓고 계시고, 수확한 것을 납품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해요. 농사를 완전히 생업으로 할 수 있겠구나 생각도 하게 되구요. 가공품을 판매할 수 있는지도 연락오고 출자도 하시구요. 이런 것만 봐도 도시는 그냥 소비하는 곳만은 아닌 것 같아요. 생산이 분명히 가능한 곳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계속 자본에 편입되어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어요. 마을에서 이런 것들을 끊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을식당 <밥풀꽃> 입구


모심: 도시농업을 하는 분들에 대한 판로 마련도 있겠지만, 먹거리, 식사하는 공간과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들었을 것 같아요.

소란: 네, 특히 로컬푸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리 건강한 재료라도 멀리서 오면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잖아요. 연료, 포장 등 이러한 것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1%라도 자립해야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해요. 도시에서 생산된 것들이 굉장히 신선하고 깨끗한 걸 보면 ‘농촌에서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할 수 있구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전환마을 운동도 의식주에서 특히 ‘식’ 부분을 마을에서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에요.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느 마을도 이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싼 것을 생각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마을을 착취하고 있겠죠. 이러한 구조를 만들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공간, 거점이 많이 있어야 돼요. 이미 있는 가게들을 지켜가는 방향으로요.

 

@<밥풀꽃>의 ‘얼굴 있는’ 건강한 밥상과 오늘의 생산자 

 

모심: 밥풀꽃의 출자자와 조합원은 몇 명인가요?

소란: 구좌당 100만 원 씩 출자를 받았는데, 30구좌 정도 돼요. 여기에는 퍼머컬쳐‧풀학교 졸업생들이 한 구좌를 만든다거나, 동네 친구들이 학교는 가기 싫지만 밥풀꽃에서 떡볶이는 팔고 싶어서 출자하기도 했어요. 또 도시농부 그룹에서도 출자했어요. 이곳은 집에서 먹을 먹거리 위주로 농사를 지었는데, 밥풀꽃이 생긴 뒤에는 협업농장으로 전환했어요. 이 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술상도 차리고 많이 생산된 것이 있으면 가져와서 “이걸 올려”라고 하기도 해요. 그래서 밥풀꽃은 ‘밭’에 맞춰져 있어요. 오늘 밭에 많이 난 작물이 있으면 그걸 먹어야 돼요.

 

모심: 밥풀꽃의 조직 형태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소란: 밥풀꽃은 협동조합 방식이지만 협동조합으로 등록하지 않았어요. 식당을 협동조합으로 만든 곳들을 방문해서 물어보니까 절대 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웃음) 절차만 많고 도움 되는 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협동조합으로 등록하지는 않지만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서류를 만들고, 총회 준비를 하고 운영위원회를 만들면서 서로를 지치게 하고 어렵더라고요. 자유로운 틀에서 하고 있어요.

 

모심: 네, 무엇보다 생산하는 분들에게 좋은 시스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소비하는 사람들도 유기농인지 아닌지 의심하기 보다는 생산자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도 하구요. 이러한 신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소란: 생산자가 아는 사람이라는 거죠. 쌀이 오면 누가 재배한 것인지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설마 이 사람이 나한테 농약을 먹이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두부도 누가 만드는지 알고, 요리하는 사람도 ‘아는 사람’인 거예요. 또 ‘굉장히 다른 질감의 채소구나’라는 걸 알게 돼요.


@도시농부들의 수확 상황에 따라 바뀌는 ‘그때그때 술상’과 <밥풀꽃>의 붐비는 점심시간


모심: 보통 몇 명 정도 밥풀꽃에 오거나 활동에 참여하나요?

소란: 낮에는 많으면 70명도 오시구요, 평균 40명 가량이에요. 초기에는 저희가 아는 사람 중심으로 오겠지 생각했는데, 동네분들이 더 많이 오세요. 학부형들, 근처 직장인들도 많이 와요. 소화가 잘 되지만 배가 빨리 꺼진데요. (웃음)


소통 방식의 변화, 조직의 새로운 구성

 

모심: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마을 분들의 반응은 어때요? 어르신들도 참여를 하고 계신가요?

소란: 우선은 은평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 단체 하신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 분들이 열린 자세로 제가 제안하는 것을 들어주고, 격려도 해주셨어요. 선배들의 성과를 받은 거예요. 그리고 동네 어른들께서는 “젊은 사람들과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씀을 하세요. 이것을 즐기는 마을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모심: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를 하는 것 같아요. 여러가지 소모임이 많고 행사도 많은데, 조직과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소란: 소모임이 엄청 많이 생겼어요. 저희가 아무런 조직을 하지 않아도 공간이 열려 있어서 그런지 그냥 와서 소모임을 만들어요. 강의를 하긴 하지만 강의가 아닌 게, 일상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해야 돼요. 수업은 2시간이지만 일상적으로 땅을 파고 농사를 지어야 하거든요. 사실 퍼머컬쳐 학교 졸업생의 작품이 <밥풀꽃>이에요. 우리에게 로컬푸드 식당이 필요한 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상상하고, 디자인, 설계를 같이 했어요. 공부로 딱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확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거예요. 같이 고민하게 돼요. 그냥 같이 술 마시고 놀고 춤추면서요. (웃음)

 

모심: 요즘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을 중심으로 여러 지원금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기도 하나요? 그리고 마을공동체와 전환마을 은평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란: 얼마 전 ‘마을만들기와 전환마을, 어떻게 만날까’ 토론회가 있었어요. 전환마을과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의 차이는 ‘성장중심주의’에요. 저희는 성장중심주의를 버리기로 했거든요. 마을공동체운동은 여전히 성장, 성과 중심인데, 이러한 것들에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전환마을 은평’은 지원 사업을 잘 안 받으려고 하고, 저희 쪽에서 비용 부담이 되어도 그냥 해요. 이게 전환마을이 확장했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 전환마을들도 지자체에서 비용을 준다고 해도 회의를 통해서 안 받기로 한 사례들이 많아요.
개체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큰 지원금을 받는다고 한들 성장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 돈에 맞춰서 사업을 할 뿐이죠. 서류에 후들거려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는 형태로 일을 하고 있어요. 사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들인데, 인건비에 맞추느라 활동가들이 고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청년들은 안돼’ 라고 단정짓지 않았으면 ”

 

모심: 도시농업, 퍼머컬쳐를 하시면서 한살림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생산과 소비에 대한 부분이 맞닿아 있으니, 조언해주실 부분이 있을까요?

소란: 한살림도 마켓 형태로 대량생산, 단일종 중심으로 가잖아요. 퍼머컬쳐는 다품종 소량 생산 위주에요. 이러한 형태가 더 빨리 유입되는 구조를 한살림에서 셋팅해야 하는게 아는가 생각이 들어요. <혜화 마르쉐@>와 같은 장터가 커지는데, 그 안에서 농민들은 어떤 포지셔닝이 있는지 고민을 해요. 요리하는 분들은 수입이 큰 데, 일반 농부들은 10만 원도 넘어가기 힘들어요. 농부들과 요리하는 분들을 연결해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몇 년 째 못 만들고 있어요. 중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 있어야 돼요. 소비자와 생산자를 다이렉트로 만나게 하는 시스템은 ‘이거 별로네’하면 안 사게 되거든요.

 

모심: 가공자와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소란: 그렇죠. 영국에서 가장 큰 유기농 농장인 리버포드(riverford)가 토트네스와 가까워요. 그곳에 자주 가서 일을 했는데, 그 농장이 유럽 전역으로 생산품을 배달할 정도지만 항상 마을을 고민한다는 거예요. 잉여 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리버포드는 매장 외에도 요리학교, 가치교육 센터, 레스토랑, 마을 행사 시 농작물 지원으로 확장을 했어요. 이런 부분에서 한살림에 좀 아쉬워요.

 

모심: 또 다른 조언이나 아쉬웠던 점은 없나요?

소란: 사실 한살림이 안타까웠던 적이 있어요. 3, 4년 전, 한국에 와서 농촌에서 대안을 찾는 청년모임을 조직하게 됐어요. 그 청년모임에서 한살림에 도움 요청 겸 프로그램 진행 겸 제안을 하러 갔는데… 부서가 많아서 그런지 행정적으로 접근 하시더라구요. 결국 예산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귀농운동본부 대표님 전화 한 통으로 예산이 나왔어요. 그래서 ‘아, 아직 청년들에 대한 생각이 없구나’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서 하는 일들은 예산을 넘어서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살림 구조는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모심: 청년들을 많이 만나실텐데, 어떤 청년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나요?

소란: 우선 도시나 한국 사회가 싫어서 와요. 그리고 특히 구체적으로 고통 받는 친구들, 몸이 아프거나 농사로 위안을 받았다거나 하는 친구들이죠.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로 머물지 않고 생산자가 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는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절반은 내 몸을 쓰면서 생존하는 문제에 관심 있는 서바이벌형 친구들이구요.
전환마을 은평에도 청년들이 많이 와요. 처음에는 ‘재밌네’하다가 일이 진행되면 ‘이건 아닌데’ 하면서 가요. (웃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처음 해보는 거고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이때 ‘청년들은 안 돼’라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해요. 나중에 다시 돌아오고, 다 연결이 돼요.
지금은 굉장히 불안한 사회이고, 청년들한테는 그 불안이 더 가중되어 있어요. 앞으로 열심히 일해도 절대 부자가 될 수 없고, 땅 한 평 가질 수 없어요. 물리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는데 청년들에게 인내가 없고, 기본 성품이 안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모심: 청년의 문제를 한살림과 연계할 부분은 없을까요?

소란: 무엇보다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게 집, 땅을 연결해 장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청년들은 한 번 농사 짓는 걸로 실력이 늘지 않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퍼머컬쳐 학교를 지역에 열려고 해도 농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 때 느슨한 모임이 필요해요. 현재의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이야기 하는, 균열을 내고 이런 걸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공간이 필요한 거예요. 이런 공간에 대해서 어른들과 접근 방법이 다른데, 청년들의 특징을 이해할 부분이 있어요.
무엇보다 공유지 만들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돼요. 도시는 거의 자본이 포위했지만 조그만 화단, 도서관, 공원을 만드는 거예요. 마을에서 모일 공간 없고 회사에서 돈만 벌어 와 집에서 자는 공간으로 확장되면 도시는 정말 시체들이 사는 곳이에요. 좀비 사는 곳 밖에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모심: 청년 문제에 이어서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가족 단위에요. 아이가 있거나 먹거리에 관심 있는 3-4인 가구 중심이죠. 그런데 이제 1인 가구도 많아지고, 비혼인 사람들도 늘고 있어요. 이러한 분들께 어떻게 한살림이 다가가야 할까요?

소란: 은평에 있는 살림의료사협의 경우는 조합원 절반 이상이 싱글이고 성소수자도 있어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있는데요, 한살림이 다양성에 대한 시각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살림의료생협의 경우도 주된 고객층은 아이를 가진 부모에요. 그런데 병과 관련된 건강 모임 외의 소모임은 싱글과 그들의 관계가 확장되어서 만들어져요.
다층의 소모임 구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구요, 이러한 고민을 한살림에서 받아들여지는 가가 차이일 것 같아요. 일단 공간을 내주시면 돼요. 열려 있는 공간이 있으면 조직하지 않아도 소모임이 이뤄져요.

 

소란은 성장 없는 시대에 더 이상 기업 안에서만 인간이 생존할 수 없다는 문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와 이에 대한 연습을 해보지 않은 2030세대는 별다른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정확한 거주지와 소유지가 없는 청년들에게 한실림에서 거점을 마련해주길, 오롯이 기획되지 않은 열린 공간을 내어주기를 요청했다. 그 공간에서, 마을에서 청년들과 주민이 관계를 맺고 활동하다 보면 마을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도 따로 섬처럼 동떨어진 공동체가 아닌,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지역 단위의 활동가가 함께 과제를 찾아서 해결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 인터뷰 일자: 2016년 5월 13일 (서울 은평구)

* 면담자: 김이경(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만조(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 구술자: 소란(유희정, 전환마을은평 대표)

* 정리: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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