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평론> 46호(2024년 겨울,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학교를 꿈꾸다

나는 학창 시절을 8학군 중 한 곳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공부는 생존 수단이자 끝없는 경쟁 무기였다. 성적과 순위가 삶의 기준이 되었고, 치열함 속에서 늘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 치열함 끝엔 항상 허전함이 남았다. “교육이 정말 이것뿐일까?”라는 의문은 학창 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교육이 단지 성적을 매기고 줄 세우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길 바랐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향했다.

강원도에서 삶은 서울과는 사뭇 달랐다. 청년들이 떠난 마을은 점점 조용해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마을, 학교가 문 닫는 마을이 점차 늘어 가면서 마을의 활력도 함께 줄어들었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잊혀져 가는 현실 속에서, 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다. 교육을 통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아이들에게 공존의 가치를 심어 주는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이 결심은 단순히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잊지 못할 기회가 찾아왔다. 2019년 엘지 대학생 글로벌 챌린저 공모전을 통해 ‘마을교육공동체’를 주제로 해외 탐방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마을교육공동체의 개념을 공부하고, 탐방지로 선정할 장소들을 조사했다. 각 장소는 교육이 지역 사회와 협력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간다는 점에서 영감을 주는 곳들이었다.

영국 토트네스: 전환마을의 중심

우리가 첫 번째 탐방지로 선택한 곳은 영국의 토트네스였다. 이곳은 전환마을 운동의 발상지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 문제를 지역 사회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로 유명하다. 토트네스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독자적 화폐를 발행하고, 지역 주민들이 협력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특히 마을의 교육 프로그램은 환경, 공동체,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연구 집회와 사업을 통해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한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가 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고, 교육이 단순히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독일 발도르프 학교: 전인적 교육 본보기

두 번째로 탐방한 곳은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였다. 이 학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진 대안 교육 본보기로,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창의적 사고를 중시한다. 발도르프 학교는 학생들에게 시험 성적과 순위 대신, 개인의 개성과 자율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예술, 음악, 수공예 등 실질적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손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교육 방식을 강조한다.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육이 아이들의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과 손까지 아우르는 통합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곳의 철학은 아이들 개개인이 마을과 세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 데 있었다.

핀란드 만네르하임: 지역과 교육의 공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핀란드 만네르하임으로, 이곳은 지역 사회와 학교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였다. 만네르하임 지역은 작은 마을임에도 학교와 마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는 단순히 교육의 장이 아니라, 마을의 공동체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며, 마을 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사회적 책임감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마을과 학교가 상호작용하며 공존할 때 교육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이 세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독특한 교육 방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곳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교육과 지역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 곳 모두 마을과 학교가 한 공동체로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힘을 키운다는 점에서 공통된 가치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경험은 한 가지 명확한 깨달음을 주었다. 교육은 결코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며, 교육은 마을 그리고 지역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아이들과 마을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내가 강원도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데 강한 동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마을을 채우고, 교육을 통해 지역을 살리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이상을 품고 준비하던 중,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가 터졌다. 발령을 기다리며 기간제 교사로 학교 현장을 경험했는데, 이 시기는 학교라는 공간과 공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세계적 유행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교라는 장이 아이들에게 단순한 학습 공간 이상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학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주는 공간이자, 아이들이 사회를 경험하고 만남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유일한 장이었다. 특히 가정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삶의 중심이었고, 이를 잃는 순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성장의 장이 크게 제한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공교육이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돕는 공간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시작하는 생활 속 기후위기 환경교육

한편 시대는 또 다른 거대한 위기인 기후위기라는 전 세대적이고 전 지구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기후위기는 학교와 지역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선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대가 협력해야 한다는 필요가 커지고 있었다. 2023년 사회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환경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 시점에 나는 기후위기와 환경교육에 관심을 가진 동료 교사들이 모인 단체 ‘학교가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기존의 환경교육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교사들의 연대였다. 기존 환경교육은 대부분 단발성 행사로 끝나거나, 학생들에게 실천의 어려움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접근은 교육이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를 느끼게 했다.

우리는 이러한 기존 틀을 벗어나,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다. 단순히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기후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먼저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기후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탄소배출량과 우리 삶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학생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전기 사용이 탄소 배출의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단순히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지시로는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기는 어려웠다. 그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 전력과 전기 소비를 데이터화해 학생들이 직접 계측하고 분석하게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탄소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찾아갔다.

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는 발표 3일 전, 전력량과 탄소배출량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진 제공 = 차윤경)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는 발표 3일 전, 전력량과 탄소배출량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진 제공 = 차윤경)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기 제품의 소비 전력을 계산해 보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 기기의 대기 전력을 줄이는 작은 행동부터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줄어든 전기 사용량과 절감된 전기요금을 확인하며, 자신의 행동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기후위기 대응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 경험은 단순한 수업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이 성과를 기반으로 2023년 두바이에서 열린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참가해 우리의 사례를 발표했다.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고,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새로운 동기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우리의 노력에 대한 인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교육으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2024년 유네스코 킹하마드 교육상 시상식. (사진 제공 = 차윤경)<br>2024년 유네스코 킹하마드 교육상 시상식. (사진 제공 = 차윤경)

이후 우리는 유네스코 킹하마드 정보통신기술(ICT) 상에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의 경험과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로써 환경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고자 했다. 지원 과정에서 수상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한국 최초로 교사 단체가 이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작점이 되었다. 환경교육이 단순히 교실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 나아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교사,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경쟁과 성적이 아닌 공존과 협력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마을을 채우는 꿈을 꾼다. 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을 믿기에, 나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과 함께, 그리고 지구와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교육이다.

차윤경
강원도초등교사로,국제교류와환경교육,데이터교육의통합에관심을두고있다.마을과학 교가 함께 성장하는 마을교육의 형태를 이상적인 교육 모델로 여기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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