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9-12 15:54:49    조회 : 259회    댓글: 0


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김민 커뮤니케이션팀 연구원


일상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생각에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찬 요즘, 바로 여름 휴가철이다. 2017년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2,600만 여명을 기록했고, 올해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은 국내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태초부터 ‘호모 루덴스’의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은 놀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이지 않은가. 여행을 떠나 푸른 하늘과 초록 빛 풍광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즐겁다.


출처: pngtree

 


‘검은 코끼리’,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몇 년 전 자신의 기사에서 언급한 이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해보이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려는 사건’을 일컫는다. 우리나라가 미세먼지로 고통 받았던 지난 봄,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보라카이 섬에는 이른바 ‘검은 코끼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라카이 섬은 1990년 이후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며, 작년 한 해 동안 200만 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약 1조 1,435억 원의 관광 수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곳이다. 원주민어로 ‘흰색 천’을 의미하는 섬의 이름에 걸맞게,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풍경은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와 무단으로 방출되는 폐수 때문에 섬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4월 4일에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보라카이 섬 폐쇄 권고안을 승인하면서 4월 26일부터 최대 6개월간 환경복원을 위해 섬은 폐쇄되었다. 아름다운 휴양지를 접근할 수 없는 오염된 시궁창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었다.

 

작년 해운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는 하루 평균 8톤, 이러한 휴가철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휴가철마다 지자체가 앞장서서 피서지 쓰레기 관리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이 사전 예방 보다 사후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기동 처리반을 운영하여 쓰레기를 신속하게 수거하고, 불법소각과 무단 투기 단속을 실시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피서지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라스틱, 비닐 등의 일회용품은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이 쉽게 쓰고 버리기 때문에 쓰레기 수거 속도가 버리는 속도를 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다. 휴가철 동안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높은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는 단기적인 대책과 병행하여, 근본적으로 일회용품 생산량을 줄이는 대책 또한 정부에서는 강구해야할 것이다. 오버투어리즘의 산물인 일회용품, 애초에 만들지 않게 하면 버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재활용 쓰레기를 쉽게 만들고 어렵게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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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splash

 


사람들이 환경감수성을 상실한 것 또한 원인이다. 한 논문에 따르면 환경감수성은 주변 환경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환경 친화적인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시기 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겪었고, 도시 생활에 적응한 현대인들은 편리한 인프라 속에서 윤택한 삶을 누려왔다. 더 이상 일상 속에서 자연을 찾아보기 어렵다보니 사람들은 깨끗한 자연을 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환경감수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지구의 환경자원을 경제적인 편익과 소비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공존과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휴가철에도 기후변화는 쉬지 않지만, 사람들은 굳이 휴가를 와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폐쇄 조치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보라카이 섬은 서서히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고형 폐기물 관리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정부 노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필자는 인간이 호모 루덴스로서의 권리를 침해받을 이유는 없지만, 반대로 지구의 환경자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미래세대의 편익을 해칠 권리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와 오버투어리즘의 산물로 세계 곳곳의 휴양지가 황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새로운 인류의 등장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고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인류, ‘호모 클리마투스’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도 많아지길 바란다.

※ 참고 논문 : 환경감수성의 이론적 탐색(2010) / 이성덕·김형균

 

※ 해당 게시물 내용은 기후변화센터의 공식 입장의 아닌, 작성자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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