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아낌없이 준다고 해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4-03 15:56:28    조회 : 158회    댓글: 0

[조운찬 칼럼]나무가 아낌없이 준다고 해도

조운찬 논설위원

바야흐로 꽃천지다. 매화·목련·산수유는 만개했고, 벚꽃도 예년보다 빨리 피었다. 뒤이어 진달래·개나리·복사꽃도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는 건 아니다. 죽어가는 나무도 있고, 가지가 잘린 채 꽃은커녕 싹도 못 틔우는 나무도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조운찬 논설위원

지난주 나무의사 우종영씨를 따라 서울 정릉의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을 찾았다. 1만평가량의 수녀원은 ‘도심 수목원’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100여종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무들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메타세쿼이아는 우듬지 생장을 멈추고, 벚나무는 수피가 썩어들어가고, 매화나무는 결실을 못 맺고 있다. 때이른 고사목까지 나타났다. 애태우던 수녀님들이 급기야 수목보호 기술자를 초청한 것이다.

정원의 수목을 둘러본 우종영씨는 메타세쿼이아가 자라지 못한 것은 수녀원을 에워싸고 있는 고층아파트의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수도원 언덕을 깎아내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수분 공급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잘못된 수목 관리도 문제였다. 수형을 고려하지 않은 가지치기, 과다한 농약 살포 등은 오히려 나무의 생장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릉 수녀원의 나무 상태는 그래도 양호하다. 주위를 조금만 살피면 관리 받기는커녕 뽑히고 잘려나가는 나무들이 지천이다. 해마다 개발과 정비라는 이름 아래 가로수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히는 제주 비자림로에서는 최근 몇년 새 수십년 된 삼나무들이 우르르 잘려나갔다. 지지난해 서울 창덕궁 앞 돈화문로에서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수십그루가 인도 확장을 이유로 무참히 베어졌다. 무차별한 가지치기로 횡액을 당하는 나무도 적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만 해도 ‘두목작업’으로 불리는 과도한 가지치기로 30년 가까이 자란 큰 나무들이 토르소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에는 과도한 가지치기 피해 사례들이 속속 신고되고 있다.

나무의 수난은 아마존 삼림 훼손과 같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도시에서 가게 간판을 가린다며 가로수의 목을 치고, 도로 확장을 위해 노거수를 베어버린다. 신도시 예정지에 용버들 묘목을 심었다가 개발 보상금을 받으면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린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는다.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를 제외하곤 나무에 대한 보호 법령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아낌없이 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처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소나무 벌목은 법령으로 금지했다. 정약용은 벌목 금지 수종에 재목이 좋은 잣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느릅나무, 비자나무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대용은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동물·초목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물균(人物均)’ 사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무는 인간에게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의 가치는 소중하다. 나무의 용도는 관상, 식용, 건축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기 오염물질을 흡수하면서 공기의 질을 향상시킨다. 도시에서는 여름철 열섬 효과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나무 한 그루는 40년간 이산화탄소 4t을 흡수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최근 저서에서 산림 조성을 탄소중립의 효과적인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나무와 공존하고 자연과 연대하는 생태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시대다. 새로운 눈으로 나무를 보아야 한다.

특히 도시의 나무와 숲은 공공재로서의 역할이 크다.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함부로 베어내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1991년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됐다. 연대의 시야를 자연과 환경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최소한 도시의 가로수만큼은 ‘가로수보호법’을 제정해 보호해야 한다. 도심 숲 역할을 하는 아파트단지와 공원에 조경사 등 나무 전문가 고용을 의무화하거나 지자체가 직접 수목 관리나 감독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빨라지면서 식목일(4·5)을 앞당기자는 여론이 거세다. 내년 식목일은 3월로 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기후재앙을 막고 지구를 살리는 나무 심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이 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출산 이후 육아처럼 식목 이후 체계적인 나무 관리가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식목이어야 한다. 그래야 뒷날 남벌이나 과도한 가지치기와 같은 나무의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식목의 계절에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310300025&code=990100#csidxa78b17896e2d927aa4a44ae974c2d71 onebyone.gif?action_id=a78b17896e2d927aa4a44ae974c2d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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