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상상하지 않는 일의 엔딩이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8-21 19:40:26    조회 : 124회    댓글: 0

[에코텍스트 172] 기후를 상상하지 않는 일의 엔딩이란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세계대공황 시절,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고, 세상에는 가난한 시대의 인간 존엄성에 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하나 더. 기후 재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지독한 가뭄과 모래바람 때문에 농사를 망쳤고, 은행에 빚을 졌고, 결국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된다. 『분노의 포도』에서 지난 세기에 이미 존재했던 ‘기후 이민자들의 가난’을 읽어낼 수 있다면, 몇 세대를 걸쳐서도 살아남는 문학적 상상력의 강력한 힘에 대해서 예찬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19~20세기 사이의 서구 문학사에서 기후 문제는 중요한 문학적 주제가 아니었다. 『대혼란의 시대』에서 작가 아미타브 고시는 19~20세기 세계 문학사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의 문학적 상상력은 기후 혹은 자연의 문제에서 비껴나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기반성도 포함되어 있다. 아미타브 고시는 1995년 아서 C. 클라크상을 수상한 바 있고, 『유리 궁전』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작가다. 그럼에도 기후 문제를 자기 작품에서도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해왔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폭풍우와 홍수 등의 기상 이변이 거듭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토네이도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못했고, 심지어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런 장면을 만난다면 “궁여지책으로 쥐어짜낸 부자연스러운 장치”로 여길 것이고 “창작의 자원이 완전히 바닥난 작가만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 의존”한다고 생각하게 되리라는 것. 
 
문학은 한 인간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현실의 비극을 구체화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갈등을 펼쳐 보이고,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복잡한 그림자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문학은 또한 불안과 불길한 징후 위에서 곧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기후는 19~20세기 사이에 서구 문학의 주요한 장치로 등장하지 못했다. 이를 테면, 뉴욕은 가보지 못한 도시일 수는 있어도 적어도 읽어보지 못한 도시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곳의 기후 재난은 문학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뉴욕과 더불어 보스턴, 그리고 홍콩이나 뭄바이, 콜카타와 같은 도시들은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공간이고 그 덕에 세계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태풍이나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문학적 상상력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 않는다. 아미타브 고시의 입을 빌어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런 거다. 
 
“실제로 기후변화를 다루는 소설은 거의 그 정의상 순수 문학 저널이 관심 있게 다루는 그런 유의 소설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어떤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이 그 주제를 언급하기만 해도 그 작품은 흔히 공상과학 소설 장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문학 창작 영역에서 기후변화는 마치 외계인이나 행성 간 여행 비슷한 어떤 것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대혼란의 시대』의 1부가 문학에 관한 것이라면, 2부와 3부는 역사 및 정치 분야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사정의 문학적 글쓰기와 다를 바가 없어서, 역사적 글쓰기에서도 기후 위기는 단순화되기 일쑤라는 점, 정치의 영역에서는 기후 문제가 집단적 실천이 아니라 도덕적 심판의 문제로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이다. 이것은 『대혼란의 시대』의 부제이기도 하다. 문학의 언어로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전례가 없는 날씨를 살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알 수 있다. 기후 위기는 문학이 상상해야 할 것, 역사가 반성해야 할 것, 그리고 정치가 실천해야 할 것들의 맨 앞자리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결국 이 기후 위기의 비극적 엔딩, 나와 당신을 피해가지 않을 전면적 새드엔딩일 것이다. 그 새드엔딩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에 대해서 더 많이 상상하고 더 많이 말함으로써 피하는 수밖에 없다. 고작해야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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