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동해안 산불,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3-30 21:57:57    조회 : 150회    댓글: 0
3월의 화마로 까맣게 그을린 경북 울진군 북면 일대의 산. 산불은 산림자원의 훼손이라는 직접 피해 외에도 대기오염, 탄소배출량 증가 등을 초래해 또 다른 기후변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3월의 화마로 까맣게 그을린 경북 울진군 북면 일대의 산. 산불은 산림자원의 훼손이라는 직접 피해 외에도 대기오염, 탄소배출량 증가 등을 초래해 또 다른 기후변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동해안 산불은 끝이 났지만 산불이 남긴 영향은 어쩌면 이제 시작일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 동물 피해, 대기오염, 토양 유실, 수질오염, 탄소배출량 증가 등 너무 많은 불씨가 남아있다
그러한 불씨는 결국 기후변화란 불쏘시개 때문에 더욱더 크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년 전 기후변화를 처음 공부하던 대학원생 때를 돌아보면 많은 미디어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빙하가 녹는 장면, 해수면 상승, 아프리카의 난민, 그리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북극곰의 사진 등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은 지금도 분명한 사실이고 그때보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사실 극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지 않는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그런데 최근 들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또 다른 사건들이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산불이다. 2019년 가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호주 산불을 시작으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산불, 유럽 지중해 산불까지 많은 지역에서 불이 났다. 그리고 이러한 산불은 더 이상 기후변화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후진국형 재난이 아닌 미국, 호주, 유럽 지역 사람들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선진국형 재난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22년 3월 우리 한국에서도 역사에 남을 만한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의 발생은 대부분 사람 때문이다. 사람들의 실수로 인한 작은 불씨 또는 방화와 같은 범죄로 인한 것이 대부분 산불의 시작이다. 물론 번개와 같은 자연적 요인도 존재한다. 그래서 기후변화로 인해 번개 치는 횟수가 늘어난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이 영향을 받는다고 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대부분의 산불 발생은 사람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왜 산불이 발생하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바로 대기와 지면의 조건이 산불이 잘 발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불씨에도 불이 잘 붙고 한번 불이 나면 아주 강하고 오래 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호주, 미국, 유럽의 산불이 모두 그랬다. 강수량이 줄어들어 지면을 적실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들고 대기의 온도가 올라 땅속의 조금 남은 물마저 대기로 빨아들여 더욱 땅을 마르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후변화다. 그래서 기후변화 때문에 산불이 강해진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3월에 발생한 강원도 산불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영동지역 4개 기상청 관측소(강릉, 동해, 삼척, 울진)에서 관측한 자료를 살펴보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산불이 발생하기 직전 겨울철 강수량은 10년당 12.6㎜ 감소했고, 기온은 10년당 0.4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즉 호주나 미국 서부 지역처럼 강수량이 줄고 기온이 올라 점점 건조해지는 기후변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작은 불씨에도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그 지역의 기후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흡수원 사라져 탄소중립 달성 난관 

그냥 눈으로만 봐도 무시무시한 산불은 그 뜨거운 열을 넘어 공기, 토양, 물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친다. 환경부가 운용 중인 정지궤도 환경위성(천리안위성2B)이 관측한 산불 시기 대기질을 살펴보면 대기오염물질 NO2는 지난 3년간 3월 평균에 비해 최대 3.5배, 미세먼지 PM2.5는 최대 22배까지 증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산불 발생 시 일어날 수 있는 공기 중 미세먼지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산림청이 2021년 설치한 강릉 관측소의 관측 자료를 살펴보면 이번 동해안 산불 기간 동안 강릉의 PM1.0이 산불이 나지 않은 주변 평창에 비해 최대 약 20배 증가했다. 이렇게 대기 중에 증가한 초미세먼지는 사람의 호흡을 통해 바로 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혈류로 유입되어 폐를 비롯한 주요 신체기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호주 산불에 대한 초미세먼지의 영향을 조사한 연구팀의 결과를 보니 산불로 인한 초미세먼지의 독성은 동일 양의 일반 실외대기 초미세먼지의 독성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번 동해안 산불은 초미세먼지 증가로 대기질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지역 시민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산불로 인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 타버린 나무일 것이다. 지금쯤 푸른 새싹이 올라와야 할 산은 까맣게 그을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렇게 많은 나무와 풀이 탔다는 것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막아주고 있는 탄소의 흡수원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산불은 심지어 나무를 흡수원이 아닌 배출원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무가 탔다는 것은 나무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던 탄소가 공기 중으로 이동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직 더 많은 조사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번 동해안 산불로 소실된 산림 면적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의 탄소 배출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면적으로 인해 인위적 탄소 배출에 비해 자연흡수량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중요하다. 특히 국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의 소중한 흡수원이 사라졌다는 것은 탄소중립 달성이 더 어려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 이러한 산불이 더 빈번하고 강하게 일어난다면 우리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다.

‘양의 되먹임’으로 지구 악순환 우려 

산불로 인한 자연 탄소흡수원의 소실 그리고 자연 탄소배출량 증가는 우리나라를 넘어 지금 전 세계인의 고민거리다.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산불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2.2PgC이다. 전 지구 사람들이 화석연료 연소, 벌목, 토지 이용 등으로 배출하는 연간 배출량의 20%에 해당한다. 그리고 2017년 기준 한국의 화석연료 기반 인위적 탄소 배출량 0.168PgC의 13배 정도이다. 이러한 수치에서 보는 것처럼 전 지구적으로 산불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고민이 있다. 2100년까지 기후를 예측하는 기후모델들의 결과를 살펴보면 더 강하고 오랫동안 타는 산불이 빈번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산불로 인한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다양한 활동으로 인한 인위적 탄소배출량의 증가가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이러한 기후변화가 다시 자연의 탄소배출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이러한 기후변화 양상을 양의 기후-탄소 되먹임(carbon-climate feedback)이라고 한다. 현재 많은 기후학자들은 양의 되먹임으로 인한 악순환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미래를 원하지 않지만 정말 이런 악순환이 시작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의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산업화 이후 전 지구 평균기온 1.5도 증가에 도달하는 시간 또한 더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산불로 인한 탄소 배출 이외에 우리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까맣게 변해버린 지면은 또 다른 기후변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기후학적으로 매우 추운 지역인 극지역을 떠올려보자.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극지역은 지면의 높은 반사도 때문에 들어오는 햇빛의 대부분을 반사한다. 그래서 춥다. 그렇다면 반대로 지면이 검정색이면 어떨까. 극지역과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즉 까맣게 그을린 땅은 태양에서 들어오는 빛을 대부분 흡수해버릴 것이다. 지면의 색깔이 변하면 태양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비율이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태양에너지를 더 받은 지면은 뜨거워지고 공기는 데워질 것이다. 즉 산불은 꺼졌지만 까맣게 그을린 지면을 빨리 복구하지 않는다면 기온은 나무가 있을 때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동해안 산불은 시원하게 내린 비와 함께 끝이 났다. 그러나 산불이 남긴 영향은 어쩌면 이제 시작일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 동물 피해, 대기오염, 토양 유실, 수질오염, 탄소배출량 증가 등 너무 많은 불씨가 남아 있다. 아직 산불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불씨는 결국 기후변화라는 불쏘시개 때문에 더 크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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