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신도시의 유치원 원아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솔깃해 할까? 보거나 만지고 싶을 동물이 있을까? 추석 앞두고 한복 곱게 입은 꼬꼬마의 또랑또랑한 눈을 마주하니 나이 든 생물학자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인천의 한 환경대표 대표인데, 무슨 말로 순진무구한 아이에게 감동을 선사할까? 잠시 생각하다, 상괭이 이야기로 인천 바다의 어려움을 전했다. 관심 끄는 데 일단 성공했는데, 감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큰애가 결혼했다면 저 나이의 손주가 있을 텐데, 요원하다. 나는 저 나이 때 개천에서 개구리 잡고, 논에서 왕잠자리 잡으려 발을 동동 굴렸는데, 주위에 개천도 논도 없는 요즘 도시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놀까? 영상으로 동물을 더러 볼 테니 돌고래는 알겠지. 그중 상괭이라는 작은 돌고래가 인천 앞바다에 산다고 얘기하면 반가워할지 모른다. 과연 그랬고 상괭이가 비닐을 먹고 죽어 간다고 말하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데 동의했는데, 아나바다운동보다 옷을 오래 입고 장난감 덜 사자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는 작년 옷이 맞지 않는다. 동생 드문 가정은 쌓인 옷을 물려줄 곳 찾기 어렵다. 그러니 아나바다 장터에 내놓았겠지. 떼 부려서 산 장난감에 금방 흥미 잃으니 방을 정리할 겸 내놓을 텐데, 유치원 원장은 환경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연락했다. 나름 환경운동을 했으니 당연하다며 한복 차려입은 꼬꼬마들 앞에서 봉투를 전했고, 대표이므로 한마디 해야 했다.
송도신도시 최신 아파트 단지의 국공립 유치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데, 아나바다 장터에 나온 옷과 장난감은 새것처럼 깨끗했을 것이다. 가격을 높게 매겼을 리 없는데, 유치원은 100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한데 원아는 모두 40명이 되지 않았다. 요즘 정원을 채우는 유치원은 거의 없다면서 그나마 송도신도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원장은 말한다. 대신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늘어난다며, 유치원과 요양원의 프로그램이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갯벌이 매립되면서 상괭이는 점점 줄어든다. 병어와 쥐치는 연근해의 산란장을 잃으니, 상괭이는 먹이를 잃는다. 고급 어종이 된 병어와 쥐치를 남획하면서 더욱 허기진 상괭이는 온난화된 바다에 떠밀려오는 해파리라도 먹어야 했다. 햇볕에 그을려 떠다니는 비닐봉지는 허기진 상괭이에게 해파리로 보이나 보다. 냉큼 삼켰는데 이런! 비닐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저쪽에 울긋불긋한 해파리가 떠다닌다. 다시 삼키니, 라면 봉투다. 죽어 해안에 밀려온 상괭이의 위장을 열면 온갖 비닐이 가득하다.
인천 앞바다의 갯벌은 드넓었지만, 이제 섬 지방에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그 갯벌도 거듭 매립되며 쪼그라들었고 육지는 손톱만큼도 남지 않았다. 매립한 갯벌에 세운 초고층 아파트 단지의 구석을 차지한 유치원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꼬꼬마들이 호기심 넘치는 눈동자로 마주 보았다. 엄마 아빠는 아깝지 않게 산 옷과 물건을 아나바다 장터에 내놓았으니, 또 사 주겠지. 한데 개구리와 왕잠자리는 몰라도 돌고래를 아는 아이들은 외롭다. 상괭이가 비닐을 먹고 죽는다니 안타까운데,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까지다.
기억의 태엽을 되감아 두 세대 전, 온갖 개구리와 잠자리가 가득하던 동네 논밭을 본다. 한복 입을 기회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추석에 옷 한 벌 구해 오셨다. 옷 입히고 예뻐했던 부모의 아이는 이제 송도신도시의 한 유치원에서 예쁘디예쁜 남의 손주에 푹 빠졌다. 혼기를 보내는 아이는 결혼 생각이 없다. 10년 넘게 사귀는 친구와 결혼도 아기도 사양하기로 약속했다고 선언했다. 둘째는 어찌할까? 내 손주는 얼마나 예쁠까? 하지만 요즘 같아서, 손주가 건강하게 자라 행복한 가족을 꾸리는 세상을 보장할 수 없다. 큰애 의지의 원천이 그렇단다.
형벌 같던 2024년 여름이 지나가는데, 여전히 덥다. 세계기상기구는 올여름 더위가 역대 최고였다는데, 한 기상학자는 올여름이 가장 시원한 것으로 예견한다. 에어컨 덕분에 견딘 여름은 지났는데, 사상 최고 기온을 거듭 경신한 9월이다. 에어컨은 답이 아닌데, 한복 입은 꼬꼬마들은 내년 이후에도 예쁘게 자랄까? 해수면이 상승하면 그 유치원은 잠긴다. 이 아름다운 세상이 언제까지 행복하려나. 내 손주가 아니어도 해맑은 모습에 마음 빼앗긴 오늘, 폭염을 용케 견딘 노인의 마음이 무겁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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