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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각) 영국 노팅엄셔주 랫클리프 온 소어에 있는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 전경. 노팅엄셔/로이터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각) 영국 노팅엄셔주 랫클리프 온 소어에 있는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 전경. 노팅엄셔/로이터 연합뉴스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이 석탄화력발전(이하 석탄발전) 가동을 멈췄다. 에디슨전등회사가 런던에서 세계 첫 석탄발전소를 가동한 지 142년 만이다.

30일(현지시각) 잉글랜드 중부 도시 노팅엄셔에 있는 랫클리프온소어 석탄화력발전소(이하 랫클리프 발전소)가 문을 닫았다. 올해 여름 공급된 1650톤의 석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발전을 시작한 지 56년 만이다.

1968년 이 석탄발전소가 운영을 시작할 때부터 이 지역에 살았다는 데이비드(74)는 “항상 그곳에 발전소가 존재했기 때문에 (문을 닫는다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 말했다고 아에프페(AFP)통신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주민인 베키(25)는 “마치 한 시대의 종말과 같다”라고 말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에너지기업 유니퍼가 운영해 온 랫클리프 발전소 해체 작업은 1일부터 약 2년 동안 이어진다고 전했다. 170명 직원 중 120여명이 해체 작업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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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클리프 발전소는 2000㎿급으로 가장 최근 한국에서 준공된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2기(각 1050㎿)와 규모가 비슷하다. 영국 기후매체 카본브리프는 “그동안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그동안 46억톤의 석탄을 연소하고 104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생산된 모든 석탄보다 많은 양”이라고 집계했다.

이번 랫클리프 발전소의 전환으로, 영국은 1882년 런던 중심가 홀본 비아덕트에 세계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을 시작한 뒤 142년만에 석탄발전의 모든 불을 끈 나라가 됐다. 또 지난 4월 2035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하기로 합의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주요 7개국(G7) 중에는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첫 국가가 된다. 독일은 2038년, 캐나다 2030년, 프랑스는 2027년, 이탈리아는 사르데냐섬을 제외하고 2025년 석탄발전을 퇴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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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폐쇄까지 140년…정부 강한 의지에 탄소가격제까지

영국이 석탄발전의 불을 끈 이유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지구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뒤, 석탄의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석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증기기관과 석탄이 더 많이 사용될수록 온실가스와 매연 등 오염물질이 늘었다.

산업혁명의 나라이며 20세기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영국의 탈석탄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사적 의미가 있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부의 의지와 구체적인 제도 개선이 얼마나 주효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의 심각성을 차츰 인지해가면서, 2008년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규정한 기후변화법(Climate Act 2008)을 제정한 뒤 에너지법(Energy Act)을 개정해 저탄소 에너지 기술 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보급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이후 2013년 전력시장개편(EMR)을 통해 남아있던 20곳의 석탄설비용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유도장치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석탄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려면 석탄발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가스발전 수준의 연간 탄소배출기준(450g/㎾h)을 준수하도록 강제했다. 이와 함께 탄소세 성격의 탄소가격 정책, 풍력발전에 대한 지원, 송배 전망에 대한 투자 등이 더해지는 등 경제 정책이 주도적으로 전환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싸고 효율이 높은’ 에너지의 대명사인 석탄발전이 오히려 재생에너지와 다른 에너지보다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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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2012년 기준 영국 전력 공급망의 40%를 차지했던 석탄발전의 비중은 차츰 낮아졌다. 2017년 4월에는 처음으로 24시간 동안 석탄발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은 경험도 축적하면서 정책 추진의 자신감을 키웠다. 2019년 이미 석탄발전 비중이 전체 발전량의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기존 석탄화력발전소 25곳은 폐쇄되거나 다른 연료로 전환(15곳)되었다. 2015년 11월 영국 정부가 2025년까지 석탄을 폐지한다는 정책 방향을 발표한 뒤 약 3년 동안 시민들로부터 의견 수렴을 받으며 정책을 수정·보완·구체화해나간 것도 특징이다.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와 김승완 싱크탱크 넥스트 대표이자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는 2020년 낸 논문 ‘영국 탈석탄정책의 배경과 주요 법제’를 통해 “영국 정부는 시장 규제가 가질 수 있는 불확실성, 노후 발전소의 수명 연장이나 신규 발전소의 진입 가능성을 애초에 없애겠다는 확실한 정책 신호를 전력시장에 보냈다”며 “전력 분야의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을 모두 해결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스 35%, 풍력·태양광 33%, 원자력 14%...탈탄소는 진행형

영국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은 2050년 국가 전체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전 목표로 2030년 전력 부문에서의 탄소중립을 내세우고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석탄, 천연가스)를 줄이고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간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3월말 영국의 정부 부처 ‘에너지안보와 넷제로부’는 에너지안보계획(Powering up Britain)을 발표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각된 에너지 자립 필요성과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에너지안보와 넷제로부 역시 그런 목적으로 같은 해 2월 신설됐다. 특히 2030년 후반까지 영국의 생산가능 전력을 2배로 늘리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광물 확보 등을 고민한다. 에너지 요금을 낮추면서 탈탄소 경제산업 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 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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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환을 이끄는 것은 재생에너지이다. 2013년 이후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6%에서 33%로 증가했다. 특히 강한 북해 바람의 나라답게 풍력발전은 같은 기간 315%가 증가했다. 가스 발전은 같은 기간 28%에서 35%로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그래도 날씨 등에 변동성 강한 재생에너지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늘었다. 원자력발전은 소형모듈원전(SMR) 중심의 기술 개발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프랭키 마요 영국의 싱크탱크 엠버의 선임 에너지·기후 분석가는 “청정 전력 시스템 구축 위한 작업은 계속 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용량을 늘리려 하지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고려할 때) 가스 발전을 대체해가기 위해서는 경쟁력있는 재생에너지 가격과 저탄소 전력의 대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전력망 운영사 네셔널 그리드는 전력망(그리드)에 100억 파운드(약 17조8천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자국의 전환 기록을 세계에 공유하고 싶어한다. 영국의 에너지 전환이 탈석탄이 구호가 아니었음을 보이며, 전세계 국가들의 동참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매트웹 기후변화 싱크탱크 E3G 부국장은 “영국은 미래 에너지가 석탄이 아닌 청정에너지라는 것을 인식했다. 영국이 제안한 이런 전환이 가속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가·도시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영국 기반 싱크탱크 엠버의 데이브 존스 디렉터는 “석탄 발전은 산업 성장의 대명사였다. 이제 청정에너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기후위기 대응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1일(현지시각) 랫클리프 발전소에서 석탄 퇴출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런던/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