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눈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7-07-06 09:58:23    조회 : 228회    댓글: 0

 

[선우정 칼럼] 후쿠시마의 눈(雪)

선우정 사회부장

입력 : 2017.07.05 03:17

하얀 눈이 낙진처럼 느껴졌다
그때 끔찍한 감촉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 나라가 왜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일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후쿠시마에 있었다. 원전에서 40~50㎞ 떨어진 곳이었다. 지진 피해 현장을 오가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유일한 정보원인 일본 라디오 뉴스가 어찌나 침착한지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덜컥 겁을 집어먹은 건 나흘 뒤 인터넷이 가능한 숙소에서 한국 뉴스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였다. 후쿠시마 위험도가 체르노빌과 같았다. 원전 폭발 순간을 담은 동영상이 무시무시했다. 내가 지옥불 곁에 있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회사에 철수를 통보하고 일행을 차에 태워 피난길에 올랐다. 3월 중순이었는데 함박눈이 쏟아졌다. 낙진이 바람을 타고 도쿄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행선지를 정반대 니가타로 정했다. 실수였다. 소설 설국(雪國)의 무대 부근에서 폭설에 길이 막혔다. 어쩔 수 없이 도쿄로 방향을 바꿨다. 길바닥에서 우왕좌왕한 한나절 동안 우리가 가장 무서워한 건 눈이었다. 하얀 눈이 방사능 낙진처럼 느껴졌다. 그때 맞은 눈의 끔찍한 감촉이 지금도 남아 있다. 폭발한 원전은 함박눈의 감촉까지 바꿔놓았다.

몇 개월 후 후쿠시마에 다시 갔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후쿠시마 시내엔 인적이 드물었다. 폭발한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20㎞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금단(禁斷)의 땅으로 변했다. 모든 길이 경찰 바리케이드로 막혔다. 차를 몰고 경계에 접근하는 동안 길거리에서 수많은 빈집을 봤다. 20㎞ 경계 밖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떠날 수 있는 자는 떠났고 떠날 수 없는 자만 남았다. 마을 공동체는 파괴됐다. 방사능에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다가 아니다. 시골 마을 원전 몇 기(基)가 전라남도만 한 후쿠시마 전체에 영원한 상처를 남겼다.

일본은 원전 대국이다. 사고 이전 일본 발전의 30%를 원전이 담당했다. 지금 우리와 비슷한 비중이다. 일본은 얼마 후 모든 원전 가동을 멈췄다. 안전성을 확보해야 돌리겠다고 했다. 또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자체를 없애겠다고 했다. 당시 집권 민주당은 물론 고이즈미 전 총리 같은 야당 거물도 '탈(脫)원전'에 찬성했다. 거대한 운동이었다. 지식인의 새로운 이념이었다. 극단적이지만 지진을 안고 살면서 원전 사고까지 경험한 나라로선 당연해 보였다. 국민 의지도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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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모습. /조선일보 DB
 
에너지를 바꾸는 건 개인의 삶과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일본이 이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을 작년 여름 도쿄에서 알았다.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부터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절전 운동을 펼쳤다. 국민은 더운 여름, 어두운 밤에 익숙해지기 위해 생활 방식을 바꿨다. 기업은 전기를 많이 쓰는 제조업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순응적인 국민성 때문만은 아니다. 20~30% 올라간 전기료를 당해낼 수 없었다. 이렇게 일본은 에너지 과소비형 삶과 경제 체질을 바꿨다.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8월을 기준으로 6년 동안 14% 이상 줄였다고 한다. 작년 여름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국민에게 '절전 요청'을 하지 않았다. 원전이 거의 돌아가지 않던 상황이었다. 실천으로 사실상 '탈원전'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흐름도 있었다. '공포'를 '과학'으로 극복하는 노력이다. 아무리 절전을 실천해도 이념만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뀐 뒤 일본 정부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했다.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면서 전문가들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新)규제 기준'을 만들었다. 기준을 넘어서는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했다. 다시 공포가 일본을 휩쓸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이 집단으로 가동 중단 소송을 잇달아 제기했다.

일본 법원은 이런 논란을 하나 둘 정리하고 있다. 작년 4월 후쿠오카법원은 원자력 전문가들이 책정한 합리적 기준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주민들이 제기하는 극단적인 위험 상황은 사회 통념과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올 3월 오사카법원은 전문가가 책정한 기준을 부정하려면 거꾸로 부정하는 쪽이 왜 전문가의 기준이 불합리한지 입증하라고 했다.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선 전문가의 과학적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지금 일본에선 5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앞으로 20기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히로시마를 겪은 일본이 원전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후쿠시마를 겪은 일본이 원전을 재가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너지 자립, 일본형 경제 발전, 환경…. 종착점엔 국가 안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목표를 향해 갈 때 원전보다 합리적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요즘 한국을 생각하면서 6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공포와 그 공포를 과학으로 극복해 가는 일본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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