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지미가 탈핵 투사가 된 까닭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7-07-12 12:02:32    조회 : 253회    댓글: 0

 

[편집국에서] 고이즈미가 탈핵 투사가 된 까닭

/김승일 부국장 겸 디지털미디어본부장


입력 : 2017-07-09 [19:09:48]
수정 : 2017-07-09 [19:09:48]
게재 : 2017-07-10 (30면)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드는 데 앞장 선 우익 정치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는 한국에서 비호감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 그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딴사람이 됐다. '탈핵 투사'로 탈바꿈해서다.
 
日 총리 시절 "원전 안전"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 앞장
 
"안전, 저렴, 청정 전부 거짓말
전문가 믿은 자신 부끄러워"
 
5·6호기 중단, 공론 조사 전
고이즈미의 자성 되새겨야
 
그는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기치로 '자연에너지추진회의'를 결성해 탈핵 운동의 선봉에서 맹활약 중이다.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총선 때는 '원전 제로' 공약화 운동을 벌여 정치권을 압박하는가 하면 '고이즈미 키즈'인 아베 신조 총리의 원전 재가동 정책을 따끔하게 비판한다.

'극장 정치'에 뛰어났던 노회한 정치인의 극적인 반전에 궁금증이 일었다. 아사히신문 취재진이 지난해 펴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마지막 투쟁 즉각 '원전 제로'로!>(지쿠마서방)에 변신의 계기가 담겨 있다.

2013년 여름. 미쓰비시, 도시바, 히타치 등 원전 제조 3사는 고이즈미를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영구 보관 시설이 있는 온칼로에 데려갔다. 업계는 안전성을 확신시키려 했지만 거꾸로 고이즈미는 그곳에서 핵폐기물 처리의 난해함을 깨닫게 된다.

'온칼로에는 지진이 없고, 지층은 18억 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그 암반을 400m 깊이로 판 뒤 사방 2㎞의 공간(도쿄 돔의 85배)을 만들고, 그곳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한다. 그런 장소는 일본에 없다. 게다가 보존 기간이 10만 년이다. 누수되면 (유해 물질이)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 10만 년 동안 절대 누수되지 않는 곳, 일본에 그런 지역이 있는가?'

이른바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서 원전을 반대한다는 고이즈미의 간단명료한 주장이 국민들 사이에 힘을 얻자 원전 세력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소위 전문가들의 비판은 예외없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감정적으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식이다. 에너지 안보 위기, 발전 단가 우위, 온실 가스 유발 우려와 함께 첨단 기술 사장과 인력 유출 우려, 해외 수출 지장 등 피해 논리를 폈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과 겹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발행되는 보수 논조의 신문에는 고이즈미를 비판하는 내용과 판박이로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공론조사에 어깃장을 놓는 칼럼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설치돼 운영 중이다. 부지 선정 때 지진 단층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강행됐고, 설상가상 지난해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문제는 진앙에서 50㎞ 내외가 고리, 월성 등 원전 12기가 빼곡한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라는 점이다. 고이즈미를 탈핵으로 이끈 고준위 방폐장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어디에 지어질지 기약이 없는 사이 오갈 데 없는 사용후 핵연료봉 등 고준위 폐기물은 원전 부지 내에 쌓이고 있고 곧 포화된다.

400㎞ 밖 서울에서 들려오는 '안전 타령'은 지역민이 체감하는 원전 공포를 애써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04년 쓰나미(지진 해일)가 인도네시아를 덮치자 쓰나미가 잦은 일본 원전의 안전 문제가 국회에서 제기됐다. 이에 대한 고이즈미 당시 총리의 답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방사능 누출 등의 사고가 없게끔 내진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으며, 쓰나미로 바닷물이 밀려온 경우에도 냉각수를 제공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고 있습니다."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에게 업보가 되었을 것이다.

고이즈미는 지난해 도쿄 주재 특파원협회(FCCJ)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집권 시절 원전을 옹호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속았다"고 탄식했다. 그는 후쿠시마 참사 후 스스로 공부한 끝에 전문가들이 말한 원전이 '안전하고' '저렴하며' '이산화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거짓말을 믿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자책했다. 

이어 논어의 한 구절을 읊었다. '잘못을 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

고이즈미의 자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신고리 5·6호기 중단 후 공론조사를 앞둔 한국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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