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동 결정...월성원전 1호기 현장 가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3-16 09:24:31    조회 : 476회    댓글: 0

 

▲ 설계수명 30년이 지난 월성원전 1호기 재가동을 앞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이 월성 1호기.

▲ 경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월 7일 경주 시내에서 월성1호기 재가동 관련해 탈핵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르포] 재가동 결정… 월성원전 1호기 현장을 가다
 
원전에 먹고살 문제 달려… 눈앞에 닥칠 재앙 알아도 침묵만

월성원전 반경 30km 이내
불국사·석굴암 등 경주 일대
직간접 방사능 피해지역이지만 평온
경주시, 원자력클러스터 조성 계획도
경제·정치적 이유로 민심 갈라져
시의원 등 신자들 10개 성당 순례하며
노후 원전 재가동 위험성 알릴 계획


발행일 : 2015-03-15 [제2935호, 9면]


인류가 찾아낸 가장 위험한 물질이라는 방사능.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월 27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재가동을 결정한 후 교회 안팎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을 두고 누구도 자신 있게 찬반을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월성원전 1호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가톨릭신문은 월성원전 1호기를 둘러싼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스도의 눈길이 필요한 곳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월성원전 1호기 재가동 소식이 전해진 경주시는 정적마저 감돌았다. 지난 2012년 11월 30년간의 설계수명이 끝나 잠들어있던 원자로를 다시 깨우려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사능 누출 등의 재난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집중적인 비상대책이 필요한 지역으로 권고하고 있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이 지역에 포함되는 월성원자력발전소 반경 30㎞ 이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5기의 원자로가 있는 월성원전에서 직선으로 약 27㎞ 거리에 경주시청이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채 20㎞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천년고도라 자랑하는 경주 일대가 고스란히 직간접적인 방사능 피해지역에 들어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경주 시내를 비롯해 월성원전 일대는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당장 먹고살 문제가 달려있어서…. 오히려 월성원전이 떠나는 걸 염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걸요.”

경주 시내 거리나 식당, 터미널 등지에서 만난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반응을 내놨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마치 ‘우리가 괜찮다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하는 뜨악한 표정이 읽혔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경주시 곳곳에서는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이하 원전해체센터) 유치를 원한다’는 펼침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2005년 주민투표로 경주에 부지를 유치한 후 오는 3월말 가동을 앞둔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에 더해 원전해체센터까지 유치해 원자력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경주환경운동연합 김윤근(72) 의장은 돈이 삶을 좌우하는 세태에 가슴 아파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김 의장은 양심 있는 이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다. “핵발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왜 생산된 전력의 80~90%를 소비하는 도회지에 짓지 않는 것일까요. 참된 신앙인이라면 이런 부조리나 부도덕한 모습에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경주 시내는 물론 월성원전 인근 경주시 양남·양북·감포 등 3개 읍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각마저 제각각이어서 한 목소리를 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정현걸(55) 공동의장은 “대책위원회마다 속내가 다르다. 다들 보상금에만 목을 매고 있어 눈앞에 닥친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정 의장의 한 마디에 월성원전의 실체가 한 꺼풀 벗겨졌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3월 7일 오전 경주시의회 회의실. 약속이나 한 듯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서는 하나 같이 비장감이 맴돌았다.

침묵을 깬 사람은 박진만(레오·36·대구대교구 경주 모화본당)씨였다. “환경문제에 보수 진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순수한 정신과 숭고한 뜻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기간제 교사로 있다 생협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월성1호기 재가동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1호기 재가동 문제에 대한 뜻을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생업까지 제쳐두고 달려온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주혁(가명, 요셉·47·대구대교구 경주 용강본당)씨는 여론주도층들이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경로잔치나 마을 청년회는 물론이고 자율방범대까지 경주지역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돈이 안 들어온 데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경주지역 지도층만 아니라 밑바닥까지 한수원 돈이 파고들어온 지 오래입니다.” 김씨의 탄식은 이어졌다. “경주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한수원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랬다. 어린이집부터 경로당, 사회복지법인, 각종 홍보시설은 물론 스포츠센터까지 한수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듯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선한 경주시의회 정현주(타르실라·52·대구대교구 경주 황성본당) 의원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강단이 묻어났다.

“경주시에 사는 누구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역발전의 지렛대가 돼야 할 돈이 오히려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핵발전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만을 지니고 있던 그를 확고한 탈핵 입장에 서도록 만든 것은 신앙이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조차 시대의 징표와 주님의 뜻을 함께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신앙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이들은 조그만 실천부터 함께 해나기로 했다. 경주시에 있는 10개 성당을 순례하며 월성원전이 우리 시대에 지니는 의미를 알려나가기로 한 것이다.

돈에 눈먼 이들의 도시. 우리 가운데 어디든 들어설 수 있는 도시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탈핵을 위한 교회의 활동


1989년 광주대교구 영광핵발전소 3·4호기 추가건설 반대운동

1993년 주교회의 정평위 ‘핵발전과 환경’ 주제 세미나 열어 핵발전 위험성 경고

1997년 대구대교구 사목국 경주 월성원전 중수 누출사건 계기로 핵발전소 조기 폐쇄 촉구

1998년 원주교구 강원도 삼척지역 핵발전소 건립 반대 운동

2005년 천주교환경연대 대림시기 맞아 「하느님의 선물, 에너지」 발간 핵발전 위험성 알려

2011년 광주대교구 정평위 영광핵발전소 찾아 핵발전 경각심 일깨워

2013년 주교회의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 발간

▶핵발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핵발전이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나 경제적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그 어떤 권리도 생명권을 앞설 수는 없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중)고 가르친다.

교회는 핵산업이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자유와 정의, 사랑이라는 사회생활의 기본 가치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핵발전 정책이 지닌 비민주성, 폐쇄성, 비윤리성 등으로 인해 인간존엄, 공동선,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 보조성, 연대 등의 사회교리 원리와 대척점에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핵기술은 인간과 자연,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분야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사태’”라고 경고한다.

또한 국가 주도형 핵발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효율’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 사회와 문화, 윤리의 관점에서 정책을 실행하고 운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글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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