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6-22 21:23:29    조회 : 160회    댓글: 0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모두가 당신처럼 살면 얼마나 많은 지구가 필요할까?’ 얼마 전 신문사 후배가 보내준 

‘생태발자국 계산기’ 웹페이지의 제목이다. ‘육식을 얼마나 하는가’ 등 의식주, 이동수단, 

전기 이용 등과 관련한 10여개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그랬더니 ‘지구 2개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5.5t으로 계산한 데 따른 것이다. 웬만하면 도보

나 자전거로 이동하려 하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해왔다고 생각한 나로선 놀라운 수치였

다. 그 후배도 내가 보기에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지구 2.9개가 필요하다’

는 결과가 나왔다. ‘비행기를 1년에 몇시간 타는가’라는 질문에 0시간을 기입해도 이 정도

인데 코로나19가 없는 때라면 지구 10개는 필요하다고 나오지 않았을까.

손제민 사회부장

손제민 사회부장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는 분명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라도 이른바 선진 물질문명 속에 사는 개인이 자극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상기후를 겪으며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수치로 제시될 때는 또 다른 감각을 갖게 된다.

육식 자제, 플라스틱 소비 감축, 플로깅(쓰레기 주우며 조깅)…. 주어진 여건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끝없이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문명 속에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가령 ‘먹는 음식 중 가공되지 않거나 포장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0에 가깝다고 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타인과 소통하려면

 스마트폰 충전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사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가 소요되는 

서버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차 역시 어딘가에서 생산된 전기

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적 삶을 지속하는 한 머지않은 미래에 파국을 피하기 어

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19세기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아야 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개

개인이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을 넘어 기업과 정부에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

소리가 소중한 이유이다.

동시에 나는 고인이 되신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일화를 생각

한다. 2000년대 초 김 선생이 책 소개 TV프로그램 <느낌표> 제작자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있다. 방송사는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권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소개하

려 하니 책 20만권을 미리 준비하라고 했다. 허락을 구한다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고 한

다. 작은 출판사로서는 책이 방송에 소개되면 더 많이 팔릴 것이고, 돈 걱정 않고 녹색평

론 잡지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김 선생은 거절했다. 방송사는 당혹스러워하며 저

자에게 접촉했다. 권 선생도 거절했다. 권 선생의 거절 이유는 이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없애려는 것입니까.”

김 선생은 후일 지인들에게 말했다. “권 선생님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당장 출판사는 돈을 벌겠지만, 늘어난 물량을 다룰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할 텐데

, 시간이 지나도 그게 유지될 것이란 보장이 없고, 언젠가 책이 안 나갈 때가 올 텐데, 그땐

 또 직원을 해고해야 할 것 아닌가요. 몸집이 너무 커져버리면 시장 논리에 타협할 일도 

많아지고, 녹색평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는 상황도 올 것 아닙니까.”

공직자들까지 사전 개발정보를 얻어 임야, 농지를 사서 시세차익을 얻으려고 혈안이 된

 세상 분위기 속에서 두 선생의 ‘거룩한 바보’ 같은 모습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까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혹은 부유한 사람들 못

지않게 소비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삶을 살아야 할까. 모두 그렇게 산다면 이 지구

가 언제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

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서 파홈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원

하는 땅을 괭이로 표기하고 출발지에 돌아오면 그 땅을 모두 갖게 해주겠다는 악마의 제

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숨이 가빠도 뛰고 또 뛰었다. 파홈은 해 지기 전 출발지에 돌아왔

지만 기진맥진해 곧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는 그 자리에 묻혔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땅은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6월25일 김종철 선생의 1주기를 앞두고 다시 생각해

보는 질문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

가.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6210300115#csidxcf954cad59c99608b32e0bff43c3a6a onebyone.gif?action_id=cf954cad59c99608b32e0bff43c3a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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