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작곡이란 절대자 앞에서 느끼는 겸허함 담는 것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3-25 11:31:41    조회 : 536회    댓글: 0
(12)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 (중)
 

“작곡이란 절대자 앞에서 느끼는 겸허함 담는 것”

‘뉴에이지’적 평안함 아닌 그리스도에 희망 둔
영성적 체험과 신학적 내용 음악으로 추구


발행일 : 2016-03-27 [제2987호, 18면]


 ▲ 아르보 페르트의 새로운 종교 합창곡인 ‘아담 수난곡’을 수록하고 있는 영상물의 한장면.


신앙고백과 새로운 음악언어의 추구

아르보 페르트는 6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시도되는 현대 음악의 다양한 전위적 기법들을 섭렵하며 다양한 작품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이러한 현대음악의 정형화된 실험들 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1968년에 그가 내놓은 작품 ‘크레도’(Credo)는 자신의 초창기 작품경향의 요약이자 동시에 이와의 결별을 암시한 의미심장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곡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나오는 C 장조 전주곡으로 시작하여 무조음악의 날카로운 파열음들로 현대의 위기를 묘사한 후 다시금 바흐의 음악으로 마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여러 음악을 조합하여 재구성하는 ‘콜라주’ 기법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이 곡이 탈린에서 명 지휘자 네메 예르비에 의해 초연되었을 때 이른바 ‘크레도–스캔들’을 일으킵니다. 음악미학 때문이 아니라 이 곡의 제목과 가사인 전례문이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곡가의 신앙고백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공식적으로 유물론적 무신론이 견지되던 상황에서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에게 많은 시련을 가져오게 됩니다만, 그는 음악미학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고 영성을 깊이 추구하는 삶의 길을 그 이후로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을 견뎌내고 첫 번째 결혼의 실패 등 개인적인 정신적 위기를 넘기며 새로운 음악적 길을 찾는 동안 그는 거의 어떤 음악도 발표하지 않으며 긴 침묵의 시간을 갖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전통대로 어린 시절 루터교에서 세례를 받았던 그는 이 은거의 시기 동안 동방 정교회 영성에 깊이 매료돼 러시아 정교회에 입교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그가 수도승들의 기도와 고요함의 전통에 접근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정신적, 영적 위기를 극복했을뿐더러 음악을 작곡하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됩니다. 그는 작곡이 절대자 앞에서 체험하는 겸허함과 침묵에서 얻는 고요함 평화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깨닫고 확신하게 됩니다. 언젠가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체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러시아에서 한 수도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떻게 하면 작곡가로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수도사는 내게 답하기를 자신도 해결방안이 있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내가 지금 기도를 쓰고, 기도문이나 시편에 곡을 붙여보곤 하는데 이런 것이 혹시 도움이 될까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닙니다. 틀렸어요. 모든 기도는 이미 쓰여 있습니다. 당신은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준비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 수도사 말 안에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래가 어느 날에는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위대한 예술가에게도 그가 더 이상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거나 만들 필요가 없는 순간이 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그때 그의 창작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작품’을 넘어선 순간에 다다른 것이니까요.”

침묵과 고요의 음악

페르트 음악에 정교회 영성이 깊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그레고리오 성가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를 자신의 음악 언어에 도입하려 시도하며 라틴어 전례의 본문들을 깊은 존중감을 가지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두 번째 부인 노라와 결혼하고 가정적 안정도 찾으면서 1976년, 마침내 비로소 침묵의 세월을 끝냅니다. 10월 27일 연주회에서 ‘틴틴나불리 조곡’을 발표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그의 음악을 상징하는 ‘틴틴나불리’라는 음악미학이 꽃 피었음을 세상에 알립니다.

‘틴틴나불리’는 종소리(Tintinnabulum)라는 뜻의 라틴어 복수 2격형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 페르트는 자신이 중세 때 지어진 성당들 종소리와 같은 숭고한 단순함과 들리지 않게 감싸고도는 충만한 침묵과 고요를 간직한 음악미학을 추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침묵과 고요는 결코 ‘뉴에이지’적인 심리적 평안함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에 뿌리내린 영성적 체험과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7년 5월 4일 독일의 유서 깊은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가톨릭 신학부는 이례적으로 아르보 페르트에게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합니다. 당시 축하 강연을 한 신학자 헬무트 호핑(Helmut Hoping)은 페르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침묵과 고요의 미학이 그저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깊은 영성과 신학을 담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로마 가톨릭 전례에서 입당송으로 사용되고 있는 ‘솔로몬의 지혜’(Sapientia Salomonis)에서 따온 한 옛날 성탄절 성가 가사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침묵의 시간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 계시를 담은 하느님 말씀에 대해 듣게 됩니다.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14-15) 이러한 하느님 말씀이 페르트의 ‘틴틴나불리’ 음악을 오늘날까지 깊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스러운 음악은 음악의 시학 형태를 한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청자를 ‘침묵의 고요’로 이끕니다. 그 안에서 듣는 이는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닌 또 다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추천 음반

Arvo Pärt, Tabula Rasa, ECM New Series 1275(1984)

수록곡: Fratres(형제들), 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벤자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찬가), Tabula Rasa(빈 서판 - 순정한 마음)

연주자: 기돈 크레머, 키스 제릿, 슈투트가르트 주립교향악단(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외

Arvo Pärt, Passio(Passio Domino Nostri Jesu Christi Secundum Joannem), ECM New Series 1370(1988) (연주자: 힐리어드 앙상블)

Arvo Pärt. Alina, ECM New Series 1591(1995)

수록곡: Spiegel in Spiegel(거울속의 거울), Für Alina(알리나를 위하여)

연주자: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세르게이 베즈로니, 알렉산더 말테르

Arvo Pärt, Music Selecta(선집), ECM New Series 2454/55(2015)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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