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 상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5-08 19:23:44    조회 : 287회    댓글: 0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0>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 상

노예생활 애환 속 피어난 흑인 영가
2016. 03. 27발행 [1357호]


노예생활 애환 속 피어난 흑인 영가

▲ 목화밭의 흑인 노예들.

우리 「가톨릭 성가」에서 ‘흑인 영가’라고 나와 있는 유일한 곡이 성가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 연안의 히스파뇨라 섬을 발견한 이후로 아메리카 대륙은 백인들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백인 이주자들은 주로 광산이나 대농장을 운영했다. 노동집약적인 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절대다수가 백인에 의해 이미 학살당한 뒤였기에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인력 수급의 목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수입하는 사업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소위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던 백인에 의해, 혹은 돈을 벌 목적으로 동료나 민족들을 팔아넘긴 일부 다른 흑인에 의해 수많은 흑인이 짐승 취급을 받으며 미 대륙으로 건너오게 됐다.

이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오는 선박에서도 마치 외양간에 소를 싣고 오듯이 실려 왔으며, 긴 항해 동안 정욕을 풀지 못한 뱃사람들에 의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적지 않은 흑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적지 않은 흑인들은 열악한 환경에 병이 걸려 죽거나 혹은 기회를 틈타 스스로 바다로 몸을 던져 자살하기도 했으며, 거칠고 오랜 항해 끝에 대략 절반 정도, 혹은 많으면 3분의 2 정도의 흑인들만 살아남아 미 대륙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 대륙에 도착한 흑인들에게는 어떠한 종교적 집회와 행위도 금지됐고, 심지어 자신들의 토착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당함으로써 이들은 점차 아프리카에서 누렸던 자신들의 문화를 잊어갔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비밀스러운 모임을 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라 불리는 노예 탈출을 돕는 비밀 조직이 생겨나기도 했고, 야밤에 울창한 숲 속이나 밀밭 등지에 자기들끼리 모여 비밀 집회를 하기도 했다. 흑인 노예들의 문화를 모두 없애버리려 했던 백인 소유주들은 대개 노동할 때 부르는 노래만은 허락했는데, 이때 발생한 노래들이 ‘플랜테이션 송’(Plantation song, 농민가)이라 불리며 새로운 아메리칸 흑인들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흑인 문화 말살의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흑인들은 그저 예배 시간에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해 그저 주워듣는 정도로 지내곤 했다. 그 가운데 이들에게 대표적으로 다가온 인물이 모세다.

하느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민족 해방을 이끌었던 모세라는 인물에 대한 열망이 노예들 가운데에 자라났고, 이 열망을 바탕으로 생겨나 구전된 노래가 유명한 ‘가라 모세!’(Go Down Moses)이다. 이 노래는 한편 독재 권력에 항거하던 시절에도 ‘저항 노래’로 많이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강제로 주입받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생활의 애환 속에서 피어난 흑인들의 노래들을 ‘흑인 영가’(Negro Spirituals)라고 하는데, 이는 서구 신앙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 및 선율과 백인에게서 배운 서구 음악이 가미된 독특한 장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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