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아름다운 진실이다. - 밀러드 풀러 이야기

작성자 : 미리내    작성일시 : 작성일2016-11-06 21:16:26    조회 : 799회    댓글: 0



진정 돈이란... 참 다운 곳에 쓰여질때 아름다운 꽃인듯하네요. 탐욕과 사욕의 도구가 아닌 모두의 공리에 맞춰진다면 돈은 그 소유자에게 아름답게 와서 참되게 모두에게 나눠질것이라 봅니다.. 돈이 왜 내게 오지 않느냐를 탓하기보다 내 자신이 아름답고 참다운 공유의 매개체가 될때 돈은 방문할 것입니다

다음은 밀러드 풀러의 이야기입니다


밀러드 풀러 (Millard Fuller)

사랑의 집짓기’라 불리는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를 창설한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 1935~2009. 2.3)는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표적인 책 제목이기도 한 ‘망치의 신학’은 집이 없는 사람에게 뚝딱뚝딱 집을 지어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그의 삶을 대변한다.

풀러는 미국 몽고메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백만장자를 꿈꾸며,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미국 앨라배마대학의 로스쿨 학생이었던 그는 친구와 함께 벤처사업(유통회사)을 시작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기 때문에 그는 변호사가 된 뒤에도 이 사업을 놓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란 그에겐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은 없었고, 그는 드디어 29세의 나이에 커다란 저택과 250만명의 토지를 소유하고, 호숫가의 별장과 호화로운 보트, 최고급 승용차를 소요하는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돈 맛을 안 그는 돈 모으는 재미에 빠져 휴일도 없이 일했다. 자연히 아내(Linda Fuller)와 멀어지게 되고 재롱부리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멀어졌다. 이로 인해 결혼 5년여 만에 아내는 “돈만 추구하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며 별거를 요구했다.

"자신의 욕망만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살지 않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지난날을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뛰었던 것일까? 그는 사업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내를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모두 털어놓았고, 두 사람은 소중한 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1965년에 살 집만 남기고 전 재산을 교회와 대학,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새로운 삶을 시도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수군거렸지만, 밀러드는 그때만큼 정신이 멀쩡한 적은 없었다.

풀러 부부는 조지아 주의 코이노니아 농장을 방문했다가 새 삶에 대해 눈을 뜬다. 그곳은 크래런스 조던 박사가 설립한, 인종을 뛰어넘는 기독교 공동체였다. 풀러 부부는 조던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흑인 농부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업을 펼치며, 1973년 아프리카 자이르(현재 콩고공화국)에 선교사로 가서 품앗이로 집을 짓고 갚아가는 방식의 ‘협동주택’아이디어를 실천해 보기로 하였다.

자이르 주민들은 쇠똥으로 지은 집에서 살면서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 부부는 건축비를 갚아나갈 능력이 있는 주민을 골라 시멘트 블록 집짓기 운동을 벌여 성공을 거두며, 3년 동안 집짓기 사업을 벌인 뒤 귀국, 1976년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것이 ‘인류애를 위한 국제 해비타트(Habitat for Hunmanity) ’의 첫걸음이었다.

해비타트(Habitat)는 ‘보금자리’를 뜻하는 말로 젊은시절 천만장자가 되는 꿈은 가졌던 풀러는 이제 천만 명에게 집을 지어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다. 밀러드의 구상은 ‘기본적인 선행과 사랑’으로 ‘무수익-무이자 대출’에 바탕을 둔 희망의 보금자리의 제공에 있었다.

해비타트는 자원봉사자들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자선단체는 아니다. 해비타트 운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혜택을 받는 가족들은 자기 집과 이웃집을 짓는 데 참여해 수백 시간씩 땀 흘려 일한다.

입주가정은 의무적으로 500시간 집을 짓는 데 참여해야 하고 최소한의 건축비를 장기 무이자로 갚아야 한다. 사랑을 통해 자립과 헌신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 새로 입주한 가족이 ‘무이자-무수익 저당’으로 대출을 받아 살면서 집값을 내면, 해비타트는 그 돈으로 더 많은 집을 짓는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차츰 개인·교회·기업 및 각종 사회단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해비타트의 이념은 모든 경제, 종교, 사회, 인종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밀러드는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카터는 그의 요청에 응했고 누구보다도 열성을 다하는 참여자가 됐다. 카터와 그의 아내 로절린 여사가 작업복 차림으로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땀 흘려 일하는 기사가 나가자 해비타트는 더욱 유명해졌다.

“불량주택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앞길에 놓여 있는 숱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차근차근, 한 번에 한 채씩 집을 짓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밀러드는 이렇게 소박한 꿈을 표현했다.

국제 해비타트는 1976년 단체를 설립한 이래 전 세계 95개국에서 사람과 지역 사회로 확산되며 발전해 지난 30여년간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과 기부를 통해 전 세계 150만여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30만채 이상의 집을 지어주었고, 현재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등 쓰나미 피해 국가에 총 35,000가구를 지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해비타트 운동이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집짓기’ 하면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카터가 1984년부터 이 운동에 참여했고 2001년 한국에 와서 이 운동의 일환인 ‘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174세대의 집을 지어줬기 때문이다.

비영리, 초교파 단체인 해비타트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동역의 관계 하에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튼튼한 집을 건축하고 있다. 해비타트가 짓는 집은 여러 단체, 교회, 기업, 학교, 개인들로부터 기부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일구어진 집으로, 이렇게 건설된 사랑의 집은 입주 가정에 무이자 원금 상환의 원칙하에 입주 가정에 제공되며, 해비타트는 더 이상 인간 이하의 삶을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할 것이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며 더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다. 소유물은 결코 장기간 만족을 주지 못한다. 소유 가치로 자아 가치를 인정받고자 애쓸수록 더 큰 좌절을 맛볼 것이다.

젊어서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삶을 살아본 밀러드 풀러는 부나 명성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다행히 그는 일찍 깨달아서 그의 삶이 부요로 망가지지는 않았다.

해비타트 운동은 현대적 박애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인지되고 있다. 밀라드 풀러가 벤처 사업가로 얻은 백만장자라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탐닉하고 있었다면 그의 삶이나 이름은 오늘날처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부를 내어 놓은 대신 인류애를 위한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 행복한 부자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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