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삶으로의 초대- 우기홍 미카엘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12-29 11:41:34    조회 : 387회    댓글: 0

우기홍 (미카엘, 배우)

요즘 전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처럼 미세한 두려움이 밀물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합니다. 그 후엔 오금이 저린 것처럼 찌릿한 것이 뒷맛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게 뭘까요?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의심해 보면서 제게 짚이는 것 중 하나는 아마 이것이 제 삶 속 밑바닥에 흐르는 죽음의 현존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게 됐습니다. 꼭 제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인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세포가 삶과 죽음의 경계 안에 서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거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죽음의 의미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생물학적인 죽음, 의미론적인 죽음도 있을 겁니다. 제가 유독 죽음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배우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배우 훈련 중 하나는 바로 저의 바라보기 싫은 부분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나 싫은 점을 바라본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사람을 도구화하는 그런 비인격적인 면을 직면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죽기보다 싫은 경험입니다.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거나 무대 위에서 공연하기 전에 무척 두렵습니다. 감독이나 관객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저를 휘감아 버리고 이걸 통해서 제 욕망을 실현하고 싶은 생각이 온통 나래를 펼치기도 합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보여 주겠다’는 그 욕구와 욕망 말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에서 깨어나 다시금 제가 해야 할 일, 바로 연기의 한 장면으로 절 다시금 데려다 줄 수 있는 건 바로 절 죽이는 겁니다. ‘대단하다는 생각 자체가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라는 인정이죠. 그런 욕망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찬물을 끼얹는 거죠. 바로 깨어나는 겁니다. 이 깨어남을 통해서 어느 것이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는 감각이 돌아오는 겁니다. 위의 말씀처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바로 자신의 단단한 에고(ego)에만 갇히게 되면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겁니다. 제가 저의 욕망에 갇히다 보면 다른 주위의 소리나 소통에 무뎌지게 되고 끝내는 고립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무대 위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정말 지옥 같습니다. 도망가고 싶고 다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붓을 꺾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붓을 꺾는다는 건 바로 작은 죽음을 의미하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이 세대를 초월한 작품이 나온다는 걸 자주 보게 됩니다. 꼭 죽음이 예술가들만의 고뇌는 아닐 겁니다. 매 순간 죽음을 받아들일 때만이 현재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에만 휩싸여 있는 삶을 떠나 무뎌진 심신을 비우고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생명력은 더 성실한 삶으로 초대합니다.

찬 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타는 냄새,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말려 주면서 느껴지는 아이의 체온과 솜털 하나하나, 아이의 웃음소리, 뉘엿뉘엿 지는 노을빛, 저녁 기도를 위해 켜 놓은 초 타는 소리, 이 모든 경험이 얼마나 제 삶을 충만하게 해 주는지요. 이것이 주님께서 지금 제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처럼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고 이제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는 거죠.

우리는 늘 같은 시간과 같은 일들의 반복으로 쉽게 지치고 지겨워합니다. 그런데 매 순간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통해 삶이 충만해질 때 자극적인 것들을 덜 찾게 되는 담백한 삶으로 변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담백함 안에 예수님이 자리하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신앙이 일깨운 연기 인생, 이제부터 시작


 
▲ 영화 피에타 촬연현장에서 김기덕 감독(오른쪽)과 함께한 우기홍씨


   "대종상영화제 신인 남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고 난 뒤, 연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과 끌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정말 꿈만 같았거든요. 그 순간 이건 정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 사채빚에 시달리는 훈철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우기홍(미카엘, 39, 의정부교구 인창동본당)씨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쟁쟁한 배우들과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씨는 10월 30일 열린 대종상영화제에 신인 남우상 후보자격으로 참석,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15년 배우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2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그는 "소속사 없이 활동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제가 대종상영화제에 이름을 올린 것은 분명 하느님께서 이뤄주신 일이다"고 했다.
 "그러니 더 겸손해질 수밖에요. 하느님께선 정말 제가 꼭 필요로 하는 순간 저를 불러주셨고, 당신 도구로 써주셨어요. 정말 기막힌 타이밍에 이끌어주시더라고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세속적 유혹도 많은데, 신앙이 있어 지금까지 잘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그간 몇몇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2011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를 기념한 연극 '바보 추기경'에서 주인공 김수환 추기경역을 맡아 신자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2009년엔 바오로 해를 맞아 기획된 바오로 사도 뮤지컬 '이마고 데이'에도 출연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뒤늦게 배우의 길을 걸었다. 연기생활에 회의가 들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교회작품을 하며 신앙에 새롭게 눈을 떴다.
 "초등학생 땐 복사도 서고 했지만 중학교 가면서부턴 성당에 발을 끊었죠. 그런데 가톨릭문화기획 IMD와 두 작품을 함께하며 하느님을 많이 체험했어요. 기도 없인 무대에 설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는 "지금은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매일 미사에 참례하려고 노력하는 신자가 됐다"면서 "인간적 욕심이 앞서지 않고 하느님 뜻이 먼저인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이제야 조금씩 연기가 무엇인지 알아가며 연기의 진짜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종상영화제 신인 남우상 후보에 오르니 주위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제 정말 배우로 인정해주는 것 같고요. '피에타' 뜻이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하잖아요. 주님께서 제게 자비를 베푸셨으니, 저도 받은 만큼 연기로 베풀고 싶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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