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성지가 된 20세기 최고 걸작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7-03-06 21:08:55    조회 : 315회    댓글: 0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건축가의 성지가 된 20세기 최고 걸작

 김윤주 건설산업硏 책임연구원

 

입력 : 2017.02.26 03:0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20세기 건축 최고 걸작 ‘롱샹성당’

프랑스 동부의 벨포트(Belfort) 북서쪽에 위치한 롱샹.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톡특한 모양의 성당의 정식 명칭은 ‘노트르담 듀오 성당’(the chapel of Notre Dame du Haut in Ronchamp)이다. 이 성당은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1887~1965년)가 설계하고 건축했다.

이 성당은 원래 중세부터 성모 마리아를 위해 봉헌됐던 곳으로, 이전의 성당은 전쟁으로 파괴됐다. 롱샹성당은 르 꼬르뷔제의 후기 작품으로 조형미 측면에서 20세기 최고의 걸작이자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감동적인 건물로 평가된다. 지금도 모든 건축가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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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껍데기 모양의 지붕과 벽에 난 크고 작은 창들로 한눈에 보기에도 기이해 보이는 프랑스 롱샹성당. 프랑스 대표 건축가 르 꼬르뷔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종교 건축의 틀을 벗어난 작품

롱샹은 4세기 이후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이 봉헌되고, 기적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순례지가 되었다. 13세기 들어 성당이 건설됐지만 1913년 천재지변으로 소실됐고, 1936년 재건된 성당은 1944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또다시 파괴됐다.

전쟁이 끝나고 성당 재건 작업을 의뢰받은 르 꼬르뷔제는 처음엔 무신론자를 자처하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알랭 쿠튀리에 신부의 설득과 종교 건축물의 독특한 공간에 매력을 느끼고 의뢰를 수락했다.

롱샹성당의 설계 조건은 3가지였다. 200명 수용 가능한 네이브(nave·예배홀) 외에 3개의 작은 채플(chapel)을 만들 것, 1년 두 번 있는 정시 순례에 1만여명이 야외 미사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 이전 성당의 유물인 성모상 보존 공간을 만들 것 등이었다. 이런 조건을 제외한 모든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은 르 꼬르뷔제는 종교 건축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각품을 완성했다. 그는 성당 설계에 인체의 스케일과 황금비율에 기초해 만든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1950년 설계를 시작해 1953년 봄에 착공하고 1955년 6월 헌당식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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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기울진 벽은 곡선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진 오른쪽 벽을 잘 살펴보면 삼각형 단면을 하고 있다.


■벽 위에 떠있는 듯한 게 껍질 모양 지붕

롱샹성당은 24.7m×12.8m 규모에 사다리꼴 모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곡면 형태의 육중한 콘크리트 지붕, 그 지붕을 떠받치는 두꺼운 곡면형 벽체 그리고 수직의 세 탑 등 3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조합돼 있다.

우선 육중한 콘크리트 지붕은 ‘게 껍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두 개의 쉘(shell) 형태로 만들어졌다. 성당 뒤에서 앞쪽으로 벽과 함께 솟구치면서 교회 전면 모서리에서 정점을 이룬다. 곡면형 지붕과 벽은 부지가 언덕에 있다는 지형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붕이 벽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지붕과 벽 사이에 작은 지지대를 두고 좁고 가느다란 틈을 만든 것도 특이하다.

곡선 형태인 벽은 건물 안쪽으로 기울어져 지붕을 따라 올라가다가 서로 하나로 통합된다. 돌로 된 남측 벽은 두께가 1.5~4.5m에 달한다. 평면은 곡선이지만 단면은 삼각형 모양인데 솟구치는 지붕 육중한 무게에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벽에는 모듈러로 크기가 정해진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배치됐다.

성당 벽 콘크리트 판 사이에는 이전 성당에서 사용했던 돌을 채우고 철망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콘크리트로 뿜칠함으로써 벽 표면을 거칠고 우툴두툴하게 했다.

롱샹성당에는 3개의 탑이 있다. 건물 전면 오른쪽 주출입구 옆에 있는 커다란 탑, 건물 뒤편 입구 양쪽에 위치한 2개의 탑이다. 3개의 탑은 벽과 함께 지붕을 떠받친다. 기능적으로는 예배홀에 부속된 크고 작은 기도실로 만들어져 순례자들이 참례할 수 있다.
  
롱샹성당은 지붕과 벽 사이에 작은 공간을 두고 그 틈새를 통해 빛을 유입시킴으로써 육중한 천장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는 그야말로 다양한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성당 내부는 신비한 빛의 향연

성당 안에 들어서면 소박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느낌을 갖게 된다. 성당 내부는 200여명이 들어가는 예배홀, 좌측과 후면에 3개의 소채플실, 성물실 등으로 구성된다.

예배홀은 앞쪽 제대 주변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사다리꼴이며 성당 내부에는 인공 조명이 아닌 자연 채광만 존재한다. 지붕과 벽 사이에 작은 공간을 내고 그 틈을 통해 빛이 들어와 육중한 천장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남측 벽에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창을 배치해 빛의 농담(濃淡)을 조절하고,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가 변화해 예배 공간에 신비한 효과가 연출된다. 이런 빛을 통해 내부 공간을 성스럽고 장엄한 장소로 느끼도록 하고 있다.

3개의 소채플은 높이 솟은 수직 공간으로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이 탑들은 상부에서 쏟아져 들어온 빛이 곡면의 흰 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공간이 되도록 했고, 시간에 따라 사용하는 공간이 달라지도록 연출했다. 즉, 뒷면에 위치한 2개의 소채플 중 동쪽을 향하는 탑은 아침 예배당, 서쪽을 향하는 탑은 저녁 예배당이라 불린다.

예배홀 내부에 있는 가구들도 르 꼬르뷔제의 모듈러를 기초로 디자인했는데 지붕과 벽, 바닥의 동적인 선들과 달리 엄격하게 기하학적이어서 현저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제단은 단순한 정방형 석재로 만들었고 의자들은 콘크리트와 목재로 만들었다. 남쪽 벽에 있는 높이 3m의 정방형 철제 출입문에는 꼬르뷔제가 직접 그린 자연의 추상적 모습들이 밝은 색깔의 애나멜로 그려져 있다.
  
프랑스 동남쪽,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시골마을에 있는 롱샹성당. (풍선 모양으로 표시된 곳)


■“중세 고딕 양식 거부한 대담한 조각품”

롱샹성당은 르 꼬르뷔제의 생애에 전환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면서 지금까지 근대 건축의 이름으로 지어진 건물 중 가장 조형적인 건물로 평가받는다. 르 꼬르뷔제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선언하는 등 철저하게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신봉해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롱샹성당은 그의 주장과 근대 건축 이념인 합리주의로부터 일탈해 조각적인 형태로 대담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사실 가톨릭 성당은 고정된 양식이나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 건축물은 중세 고딕 양식이라는 일반적인 틀이 있고, 이를 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틀을 깨버렸기에 당시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롱샹성당은 20세기 교회 건축물들이 중세 고딕 양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의 결정체이자 현대 교회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롱샹성당은 시골의 작은 성당이지만 오늘날 신앙 순례자와 건축학도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일반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찾아가는 명소가 됐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럽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고딕 양식의 성당들 속에서 소박하지만 극적이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 독특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르 꼬르뷔제는 “나는 이 성당을 건축함에 있어 침묵의, 기도자의, 평화의 그리고 영적 기쁨의 장소를 창조해 내기를 원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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