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이야기- 운명적 만남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1-30 00:47:31    조회 : 345회    댓글: 0

 

[신앙단상] 미켈란젤로 이야기 - 운명적 만남

고종희(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2018. 01. 21발행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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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쓴 로맹 롤랑의 말이다. 나는 2년 전 미켈란젤로에 관한 책을 출판하면서 천재란 “고통받고, 희열하며, 신과 만나는 자”라고 생각했다. 천재는 스스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밤낮으로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일한다. 미켈란젤로에게 그것은 예술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두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운명적 만남이란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만남이다. 미켈란젤로에게 그 첫 번째 운명적 만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 후원자로 꼽히는 ‘위대한 자 로렌초’ 메디치와의 만남이었다.

15세쯤 되던 사춘기 무렵, 소년 미켈란젤로는 친구를 따라 메디치 가문의 고대 조각 수집품을 모아 놓은 산 마르코 수도원에 갔다가 ‘위대한 자 로렌초’와 만났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조각을 공부할 수 있는 그곳에서 로마 시대의 목신을 카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어렸던 미켈란젤로는 원작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 욕심에 치아까지 다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위대한 자 로렌초’가 그곳을 지나다가 어린 소년이 조각품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든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너는 이 늙은 목신의 치아까지 다 만들어놨구나. 하지만 늙으면 이가 한두 개는 빠지기 마련이지.”

후에 미켈란젤로는 이 순간을 회상하며 로렌초가 그곳을 떠나기까지 “천 년은 걸린 것 같다”고 술회한 바 있다.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과 빨리 고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로렌초가 와서 보니 파우노 상의 치아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본 로렌초는 소년을 자기 집에 와서 살게 했다.

로렌초는 미켈란젤로에게 좋은 방을 주고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아들처럼 생각하겠으니 네 집처럼 생활하라”고 했다. 이렇게 미켈란젤로는 인생에서 가장 민감한 사춘기 때 위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당시 메디치가 저택의 식탁은 당대 최고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과 시인,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하며 철학과 예술을 논하던 르네상스 문명의 요람이었는데 소년 미켈란젤로는 주인의 남다른 귀여움을 받으며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한 것이다.

로렌초 메디치의 식탁은 도착 순서대로 주인 옆에 앉는, 이른바 서열 파괴의 식탁이었다고 한다. 이 제도가 미켈란젤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원래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켈란젤로는 이 집에 살고 있었으니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로렌초 옆에 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소년에게 로렌초 메디치는 휘파람으로 신호하면서 “어이 미켈, 어서 와 밥 먹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는 이 집에서 2년 정도 살았다. 2년이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세월이지만 미켈란젤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천재 중의 천재였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판이 나는 것 같다. 그가 배우자일 수도, 스승일 수도, 친구일 수도, 그 밖의 어떤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평생을 지배했던 정신세계와 지적 품위는 바로 소년 시절 메디치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우리도 적어도 인생에서 한두 번은 그 누군가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기도, 또 그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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