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과연 좋은 걸까!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2-14 00:05:56    조회 : 319회    댓글: 0

 

[부일시론] 좋은 게 과연 좋은 걸까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입력 : 2018-02-07 [19:19:28]
수정 : 2018-02-07 [19:19:28]
게재 : 2018-02-08 (38면)

1913년 6월 4일 영국 런던 남부의 엡섬 경마장은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더비 경마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영광이 절정이던 시점,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고 왕과 왕비가 직접 참관하고 전통에 따라 왕의 말도 참여하는 경마도 흥미진진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흥분은 경기 도중 트랙으로 뛰어든 한 여성으로 인해 완전히 깨졌다.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달라는 요구를 하며 시위 중에 돌을 던지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거나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 등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날도 여성참정권 단체인 '여성사회정치동맹'의 깃발을 국왕 소유의 말에다 매달려고 뛰어들었다가 말과 충돌한 것이었다.  다행히 말과 기수는 가벼운 부상만 입었지만 에밀리 데이비슨은 뇌진탕으로 나흘 후 숨을 거뒀다.
 
이 불행한 사건에 대한 당시 세간의 반응은 차가움을 넘어 경멸과 분노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문지상에서는 '치매에 걸린 불쌍한 여성의 무의미한 죽음'이며 '악명 높은 여성참정권주의자의 범죄'이고 '현장의 모든 이들이 이 여성에게 분노'했으며 심지어 '만약 그녀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면 관중들이 그녀를 때렸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한 왕비는 그날 자신의 일기장에 '끔찍한 여자였다'고 썼다.

좋은 게 좋은 건 기득권층뿐 
사회적 약자는 벼랑에 내몰려 

인류 역사의 더 나은 상태는 
위대한 반대자가 이룬 것 

용기 있는 피해자 문제 제기에 
끊임없는 반성과 개선 있어야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여성에게 공감과 슬픔 대신 분노로 반응한 이들의 마음속에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아마 에밀리 데이비슨을 지금 이대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굳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불평꾼'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모두가 다 행복한 지금 도대체 왜 세상을 시끄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100년이 넘은 지금,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이 땅에 사는 우리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좋은 게 좋다'고 말한다.

예전엔 남자들이 군 생활에서 가장 뼛속 깊이 새기게 되는 기술이 총을 쏘고 포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이 있더라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보아 넘기는 것이었다. 이병 때 겪는 고통은 일병이 되면 편안함으로 바뀌고 상병 때 목격하는 부조리는 병장 때가 되면 특권이 되어 보상받게 된다. 쓸데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튀어 봐야 모난 돌이 정을 맞고 주머니 속의 송곳이 손바닥을 찌르는 법이다. 당장은 이게 아닌 듯해도 조금 참고 지나면 나도 그 시스템에서 편해질 날이 온다. 이게 우리가 배워 온 이른바 '사회생활'의 요령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다'는 말에는 주어가 빠져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이 좋다는 말인가. 당연히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주류,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군대에서는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계급이 올라가지만 사회에서 주류와 비주류, 강자와 약자는 그렇게 사이좋게 순환하는 관계가 아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되풀이되는 사이 사회적 약자들은 끊임없이 벼랑에 내몰리고 떨어지고 그리고 잊혀 간다. 그렇게 떠밀린 이들은 마지막 발버둥으로 달리는 말 앞에 목숨을 내어놓는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추행·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수십 년간 일을 유지하기 위해 관계자들의 성추행을 견뎌야 했던 여배우들, 체조선수 156명을 성폭행해 온 대표팀 의사 등 믿을 수 없는 끔찍한 폭력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상관의 성추행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오던 검사의 용기 있는 문제 제기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너무 많이 늦었고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이 시점에조차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건데…'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좋은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 혹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쳐 나갈 때 비로소 '좋은 것'이 된다. 인류 역사에서 좋은 것, 더 나은 상태는 늘 기존의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 아니라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위대한 반대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에밀리 데이비슨이 매달려고 했던 여성참정권의 깃발은 그녀와 함께 쓰러져 경마장의 흙바닥에 딩굴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더럽혀지고 찢기고 빛바랜 그 깃발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인 영국 의회에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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