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은 청년 소식에 '3000원 김치찌게' 식당 연 신부님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3-27 15:13:46    조회 : 513회    댓글: 0


굶어 죽은 청년 소식에 ‘3000원 김치찌개’ 식당 연 신부님


 [중앙일보] 입력 2018.03.27 06:00

앞치마 두른 신부님 … 공기밥은 무한 리필  


1000원짜리 3장만 들고 가면 김치찌개와 ‘무한리필’인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안 건물 2층에 있는 ‘청년식당 문간’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문간’엔 흥미로인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사장님’이 19년째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신부란 점이다. 


이문수 신부가 지난 21일 자신이 운영하는 청년식당 '문간'에서 김치찌개를 서빙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 21일 낮 12시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제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이문수 신부(44)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나르고 있었다. 그는 “손님, 맛있게 드세요.”라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테이블에선 “라면사리는 1000원이 추가된다”고 손님의 물음에 답했다. 16평(53㎡) 크기의 식당 안 30개 좌석은 점심시간 동안 손님들로 꾸준히 채워졌다.  
  
청년이 아닌 누구라도 식사가 가능하지만, 식당 이름에 ‘청년’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그는 2015년 10월 식당 개업을 결심했다. “수녀님으로부터 한 청년이 고시원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청년들이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신부는 자신이 소속된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동의를 얻어 2016년 3월부터 식당 개업을 준비했다. 

8명의 멘토에게 배우고, 창업 강의 쫓아다녀 
   
눈에 식당만 들어올 정도로 열정이 넘쳤던 그는 수개월 간 주변의 ‘창업 고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회 사업가, 청년문화 기획자, 식당 운영 경험자 등 7명 이외에 노량진 고시원에 사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그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줬다. “노량진에서 한끼 싸게 먹을 수 있는 게 3000원짜리 컵밥이에요. 그런데 3만원 정도 되는 공무원 수험서 한 권 사면 이 컵밥도 열끼를 굶어야 하지요.” 공시생의 뼈아픈 현실을 담은 이 말이 이 신부의 마음을 후벼팠다.   

그의 ‘창업 스터디’는 계속됐다. 서울시 ‘무중력 지대’, ‘십시일밥’과 같은 청년 공간을 탐방했다. 또 창업을 주제로 한 강연을 쫓아다니고, 관련 서적도 찾아 읽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필요한 건 큰 돈 들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창업 성공의 지름길은 ‘단골’을 만드는 것이란 점을 깨달았어요.” 무난하고 대중적인 김치찌개를 단일메뉴로 정했다. 식당 이름인 ‘문간’에는 청년 누구나 편히 드나들 수 있는 ‘문간방’ 같은 곳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담겨있다. 
   
무료 급식소 아닌 ‘3000원’에 숨은 뜻
 
김치찌개 가격에 대해 이 신부는 “월세 150만원, 요리사 한 명의 인건비, 재료비 등을 반영했을 때 식당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김치찌개 100인분은 팔아야 하루 운영비 30만원을 맞출 수 있는데, 아직 60~70인분 정도에 그친다. 쌀이나 반찬 기부로 적자를 메꾸고 있다. 수도회에서 지원해준 계약금 2000만원은 식당의 수익금으로 이 신부가 조금씩 갚아 나가야한다. 
  
“차라리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지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료 급식을 한다면 과연 청년들이 쑥스러워서 하지 않고 올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을 위한 무료 급식이 바람직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000원’에는 이 신부의 이런 셈법도 녹아있다.

 3월의 눈이 내린 지난 21일 식당에선 다양한 손님들이 뜨끈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언 몸을 녹였다. 대학생과 직장인은 물론이고, 주변 상인과 거리 판매원들도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식당과 가까운 국민대학교의 학생 김모(27)씨는 “근처에서 자취를 해 매주 몇 끼는 이곳에서 먹는다. 밖에서 한끼 먹으면 카페 아르바이트로 버는 시급이 날라간다. 학교식당도 3000~4000원이 드는데, 찌개를 3000원에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햄버거·떡볶이 등 ‘청년물가’가 치솟아 청년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직장인 5명 무리는 김치찌개 5인분에 라면 사리를 두 개 추가해 총 1만7000원이 나오자 “보통 식당의 절반 가격”이라면서 기뻐했다. 전체 손님의 70% 정도가 매주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라고 한다. 
  
명문대 공대 다니다 99년 수도회 들어가  
  
이 신부 역시 한 때 ‘배고픈 청년’이었다. 그는 서울 경복고를 졸업한 후 삼수 끝에 1995년 명문대 공대에 입학했다.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는 이때까지 행복이란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해 돈 많이 벌어서 일찍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6년 겨울 방학 때 경험한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계기로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고, 99년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제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건 예수님이 실천한 사랑이었어요. 이런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체인점 내고 파 … 내 꿈은 제2의 백종원” 
  
창업을 준비하면서 두 달 간 요리학원도 다녔지만 요리 실력만큼은 아직 ‘초심자’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은 홀 서빙만 맡고 있지만, 언젠가 주방으로 ‘진출’하는 꿈을 꾼다. 그는 “대중적인 음식을 싸게 파는 ‘문간’ 체인점을 여러 개 내고 싶다. 내 롤모델은 요리연구가 겸 사업가 백종원”이라면서 웃었다.  

이 신부는 식당과 마주보는 별도의 공간(20평‧66㎡)을 아늑한 ‘북카페’로 꾸미고 있다. 4월초면 완성될 이 북카페에는 청년들이 즐겨 읽는 자기계발서·소설 등 기부 받은 책 600여 권이 있다. 그는 이 식당이 청년을 위한 ‘문간방’이 되길 바란다. 이 신부는 “김치찌개를 먹지 않아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각자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정체’가 신부란 사실을 안 일부 손님들은 그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상담을 받기도 한다. “배를 채우러 왔다가 마음까지 채우고 가는 식당이 되면 좋겠어요.” 그의 온화한 미소가 식당을 꽉 채웠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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