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담아낸 영감의 세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2-17 16:32:20    조회 : 19회    댓글: 0
빛으로 담아낸 영감의 세계



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人
사진작가 고송 장국현
장국현 작가는 나무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기도로 시작하는 삶!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다. 사방이 고요히 어둠에 가라앉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는 기도를 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큰 스님의 가르침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생전에 큰 스님은 자신이 죽고 나면 금강경에 의존하라고 했다. 기도와 촬영삼매경을 통하여 지혜를 터득하였다. 그 지혜는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있게 하고,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을 예측하여 사진에 담아내게 했다. 설악산으로 갔다. 소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잡으려고 밤 2시에 산을 올라가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두 달을 보내고 돌아와 사흘을 앓았다. 팔공산을 종주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파티마병원에서 여영환 신부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다. 그날부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다.

 

찰나의 신비를 포착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작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를 잊어야 만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위해서 작가는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내려놓는다.

사진작가 장국현은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에게 기도는 하느님과 교유하는 시간이고, 신의 계시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불현듯 영감이 다가오면 그는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한밤중에 산을 올라가면서도 큰 벗을 함께 하는 듯 두려움을 모른다. 오로지 혼자가 되어야 하는 그 순간의 외로움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찰나의 신비를 포착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작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를 잊어야 만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위해서 작가는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내려놓는다. 아침마다 신에게로 다가가는 그 기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기도는 영혼의 일이고, 사람은 누구나 간절히 원하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따를 뿐이다.

방송국에서 설중 대왕송을 찍자고 할 때도 그가 날을 잡았다. 산속에 텐트를 치고 사흘 동안 야영을 했다. 산을 오를 때는 눈이 오지 않았다. 대왕송 가까운 곳에서 텐트를 쳤는데, 밤 세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사람들이 그를 ‘영적인 작가, 신들린 작가’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타이밍을 잘 잡아내기 때문이다. 텐트생활 사흘 내내 눈이 내려 60cm나 쌓였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나무에 덮여 있던 눈이 얼고 상고대가 맺혔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상고대가 잘 맺히지 않는다. 높은 산의 강추위만이 거목의 소나무에 서리꽃을 만들 수 있다. 눈 속에서 사진을 찍는 그를 방송국 사람들이 또 카메라에 담았다. 추위에 눈물이 나고, 콧물이 흘러 고드름이 맺혔다. 그런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들린 듯 사진을 찍어대는 그의 옆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촬영삼매경에 들어간 그는 아무런 고통도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신목을 찾아 산을 오른 게 몇 년인가. 신목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고 ‘바로 이거다!’ 하는 찰나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무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사진을 찍는 사람과 나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계시의 순간이 주어져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철저히 믿고 있다. ‘사진은 티이밍의 예술이다.’ 작가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그 절대 절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진이 되려면 구름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각도까지 맞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생애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백두산 정상에서 두 달간 머물렀다. 자연이 보여주는 극적인 찰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동안 몸무게가 12kg이나 빠졌다. 그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아서 마침내 장백폭포에서 구름이 밀려왔다. 맑은 하늘을 바탕으로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흐르다 천지를 감싸듯이 가득 덮었고 산은 티 없이 맑았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을 위해 17년 동안 백두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런 만남은 처음이었다. 그는 신들린 듯 셔터를 누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오랜 기다림과 기도가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 바람과 구름은 움직이는 것이고, 자연은 쉬지 않고 변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겼다. 신이 천지를 중심으로 천당과 극락을 재현해서 보여주었다고.

“어째서 전체가 아니고 나무의 부분을 찍는지 설명해주세요.”

“나무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보여주려면 실물크기와 같이 보여줘야 해요. 나무 전체를 보여줄 수 없으니 부분의 디테일함을 살려서 그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하는 거죠.”

실물이 주는 감동을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단순하고 함축되고 디테일한 부분으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나무를 작가의 주관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사람의 주관으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실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사진은 작가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며 자기도취에 빠지면 실물이 주는 감동을 전하기 어렵다고 한다. 작가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움과 거목의 신비로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차례로 펼쳐졌다. 동영상에 흐르는 바탕음악이 대한민국 남성 재즈 보컬 1세대인 김준 씨가 장국현 선생님에게 헌정한 노래 ‘고송의 길’인데, 국악인 김용우 씨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대관령 제왕산에 산다는 신목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그 나무 한 본을 두고 8년이나 좇아다녔어요.”


수령 900년이나 되는 소나무인데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가 10m 넘고 밑둥치에 지름 1m의 큰 혹이 달려 있으며 나무둘레가 3m 넘는다는, 그 신목을 찍으려고 작가는 동상에 걸릴 각오를 하고 산에 올라갔다. 영화 30도의 칼바람이 뺨에 면도날을 긋는 것 같은 아픔을 남기는 데도 얼어 죽지 않고, 동상에 걸리지도 않은 것은 완벽하게 촬영삼매경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상태여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좋은 나무와 좋은 사진을 찾아서 산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52년째라고 한다.
 

사진작가 장국현의 작품.
사진작가 장국현의 작품.

“소나무를 보면 바로 저거다 하는 영감이 오는지요?”

“가까이 가면 벌써 서늘한 기운이 뻗칩니다.”

그는 나무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오래 나무와 교류하며 살아온 결과일 것이다. 강원도 높은 산의 고사목은 죽고도 썩지 않고 산 나무와 생을 함께 한다며, 그렇게 영령한 기운을 뿜는 나무는 보통 산에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깊은 산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사진작가가 알아두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언급했다. 안개가 끼어 있을 때 상고대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다거나, 별도 색깔이 있다거나, 안개로 농담이 투명해지면 실체가 분명해지는 반면에 뒤에 있는 부분은 희미해진다는 얘기 역시 오랜 경험이 일러준 가르침이었다. 눈이 올 때는 사진을 멀리서 찍어야 한다며 가까이 가면 그 아름다움이 줄어든다고도 했다. 밑둥치가 새카맣도록 큰 번개를 맞은 거목이 끄떡없이 살아서 잎을 피운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높은 산에서는 산 아래서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조화로움이 실현된다는 말이 여운을 준다. 그간의 작업 결과를 담은 동영상에서 나는 잠깐 거대한 자연의 신비를 엿보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작가는 하늘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는 확신이 명확해진다. 촬영삼매경에 들어가서 자신을 잊은 그 순간, 작가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도 위기를 못 느끼니 보다 못한 신이 그를 보호해줄 수밖에.

“사진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진은 기록성을 가진 예술입니다.”

작가의 영상에 담긴 수만 점의 거목들도 한 세대만 넘어가면 다 죽고 말 거라며, 작가가 죽음의 위기를 넘겨가며 작업에 매달리는 것도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기록해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붉은 주목 같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장 먼저 죽고 다음이 소나무라고 한다. 동영상에 담아둔 작품 중에 이미 죽은 나무가 많다며, 사진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 만물 중에 죽지 않는 것이 없고, 나무 역시 때가 되면 그렇게 사라진다고.

자연은 인간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지만 무서운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암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를 찍기 위해 바위에 매달려 죽을지 살지 모르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는 하늘에 자신을 맡긴다. 깊고 깊은 산을 헤치고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모두 그 결과물이다. 그 동안 찍은 사진이 수십만 장이고, 필름도 큰 것으로만 찍는다.

학은 지혜의 상징이고 원앙새는 사랑의 상징이다. 사랑이 완성되면 지혜가 되고, 지혜는 가슴에서 나온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혜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기까지 7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산과 소나무가 주는 에너지가 그에게는 모두 빛이고 성령이며,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지혜로 인한 깨달음이라고 믿고 있다. 참 예수님은 자신의 가슴에 있고, 소나무와 자연이 그에게는 신의 기운이라며 사진을 찍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몸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