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클래식 '사계'...고아들을 위해 쓰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12-21 20:59:59    조회 : 207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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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클래식 - 伊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허약했지만 음악 열정 남달라
가톨릭 사제된 후 보육원 부임
35년간 근무하며 작곡에 열중

협주곡 500편·소나타 90곡 등
수많은 작품 남긴 ‘다작 대명사’


수많은 클래식 곡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사계’일 것이다. 지하철 안내방송부터 휴대전화 벨소리 또 대중가요의 전주곡으로 친숙함을 넘어 진부하다 느낄 만큼 귀에 익은 곡이다. 300여 년 전 귀족의 저택 어딘가에서 연주됐으리라 생각되는 이 작품은 사실 한 신부님에 의해 작곡됐다. 바로 이탈리아의 신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다.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비발디는 허약한 아이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훗날 산마르코 성당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주자가 된 아버지는 어린 비발디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비발디는 금세 놀라운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15살이 되던 1693년, 비발디는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입교한다. 그가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가정형편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톨릭 사제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비발디가 당시로는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발디는 수도원에서 기숙하지 않고 통학하며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는다. 아마도 그의 건강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오히려 비발디에겐 많은 시간을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에 할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25살이 되던 1703년, 10년의 수학 끝에 비발디는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해 병원이자 보육원, 또 학교이기도 한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음악 교사로 부임한다. 18세기 베네치아에는 이런 형태의 보육원을 겸한 학교가 많았는데 이는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특성 때문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돈과 사람이 모여드는, 일 년의 절반을 카니발로 보내는 축제의 도시였다. 축제 기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아기가 길거리에 버려졌는데 이렇게 버려진 사생아와 고아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킬 학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에타 보육원의 음악 교육 수준은 상당했다.

1706년, 비발디는 그의 지병인 천식이 문제가 돼 신부의 직은 유지하되 미사의 집전을 면제받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신부가 미사 도중 상당 부분을 라틴어로 노래하거나 낭송해야 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비발디의 기침 때문에 미사 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비발디는 신부임에도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발디는 이 사생아들을 위한 보육원에서 35년간이나, 신부이자 교사로서 거의 평생을 음악 교육과 작곡에 헌신한다. 57세가 되던 1735년,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최고 책임자에 오르고 3년 뒤인 60세가 되던 1738년 은퇴했다.

비발디는 다작의 대명사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닌, 보육원의 교사로 봉직하며 제자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었다. 500여 편의 협주곡과 신포니아, 90여 곡의 소나타, 90여 편의 오페라와 그 외 수많은 칸타타와 모테트는 고아들과 함께 또 고아들에 의해 탄생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1723년 비발디가 44세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172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돼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으며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형시인 소네트(Sonnet)에 표현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네 개의 협주곡으로 담아낸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당시 대부분의 협주곡이 오케스트라의 파트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합주 협주곡 형식이었던 반면, 비발디는 솔로와 나머지 악기군으로 배치하는 독주 협주곡에 중점을 둬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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