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내년 성탄엔 볼 수 없을수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1-04 21:29:33    조회 : 162회    댓글: 0

<16>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

1907년 한라산에서 첫 발견
佛 카톨릭 사제이자 식물학자
한국 전나무로 세계에 소개

크기 아담하고 수형 아름다워
키작은 트리용 품종으로 선발
전세계 빠르게 퍼져나가

기본종인 토종나무 집단고사
한라산 1400m 위로는 참혹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
개선법 없어 멸종위기 거론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해발 천미터 고지를 오르면서부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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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나무 가운데에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나무가 있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제주의 한라산을 비롯해 지리산 덕유산 무등산의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특산종이다.


구상나무가 식물학자들의 눈에 띈 건 1907년 제주 한라산에서 처음이었다. 그때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가톨릭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위르뱅 포리에 신부(1847~1915)가 처음 발견하면서 그동안 알려진 나무와는 다른 특별한 나무라는 걸 알아챘다. 이태 뒤인 1909년에 포리에 신부와 같은 소속의 에밀 타케 신부(1898~1952)도 이 특별한 나무를 발견하고 표본을 제작해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미국과 유럽의 식물학계에 보고했다.

이 즈음 한반도의 식물을 치밀하게 조사했던 나카이 다케노신(1882~1952)이라는 일본인 식물학자가 있었다. 우리에게 근대 식물학 체계가 채 정립되기 전이었던 그때 나카이는 한반도의 식생을 꼼꼼히 조사하고 식물 체계를 정립한 인물이다. 나카이는 포리에 신부와 타케 신부보다 먼저 구상나무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카이는 구상나무의 특징을 발견하지 못하고,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분비나무로 여기고 지나쳤다.


그때 구상나무의 실체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식물학자는 미국 하버드대의 어니스트 윌슨이었다. 윌슨은 동아시아 식물 표본을 조사하던 중에 한라산에서 채집된 이름이 붙지 않은 표본에 관심을 가졌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두 신부가 보낸 표본이었다. 윌슨은 나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와 타케 신부와 함께 한라산을 올라 이 나무가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임을 확인하고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했다. 제주도 지방말로 ‘쿠살낭’이라고 부르던 이 나무는 그때부터 ‘구상나무’라는 이름과 ‘Korean fir(한국 전나무)’라는 영문 이름을 갖고 세계 식물학계에 소나무과의 한국 특산종으로 알려졌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바라본 백록담 부근의 구상나무 군락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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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물학자가 구상나무를 세상에 알리는 동안 타케 신부의 구상나무 표본을 받아본 유럽의 가톨릭 사제들은 이 나무를 성탄 트리용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탄 트리는 전통적으로 전나무를 많이 이용해왔지만, 전나무는 크고 우람하게 자라는 탓에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나무와 같은 종류인 구상나무는 크기가 아담해 편리할 뿐 아니라 수형도 훨씬 아름답다는 데에 주목했다.

유럽의 식물학자와 조경학자들은 구상나무를 성탄 트리용 나무로 쓰기에 더 알맞춤한 품종으로 선발했다. 새로 선발한 구상나무 품종은 대개 우리의 구상나무보다 키가 작은 품종들이었다. 성탄 트리로 쓰이는 구상나무 품종 가운데에는 ‘dwarf(난장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품종이 많은 건 그래서다. 유럽을 중심으로 선발된 구상나무 품종은 성탄 트리용 나무로 환영받으며 빠른 시간에 전 세계에 알려졌고, 성탄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탄 트리로 많이 쓰이는 나무는 우리의 토종 구상나무가 아니라, 구상나무를 바탕으로 서구의 식물전문가들이 선발한 구상나무의 새 품종이라는 이야기다. 구상나무 품종이 "세계에서 성탄 트리용 나무로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로 알려진 건 지나친 과장이지만, 그럴 만큼 많이 소비되는 건 사실이다. 애시당초 성탄 트리용으로 선발한 품종이니 당연한 결과다.


하얀 눈을 온 몸에 소복히 쌓은 한라산 구상나무는 신비로울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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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품종을 수입해 소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구상나무 품종에 대한 지식재산권(IP)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구상나무에 대한 재산권료가 아니라, 구상나무를 기본종으로 하여 새 품종을 선발하는 데에 투여된 지적 작업에 대한 재산권료다. 심지어 구상나무의 원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구상나무 품종을 수입할 때에도 당연히 품종을 선발하는 과정에 들인 지적 작업에 대한 재산권료는 지불하는 게 맞다.


우리의 토종인 구상나무를 역수입하면서 재산권료를 지불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지만, 이는 오해다. 토종 생물자원에 대한 재산권은 다른 나라가 주장할 수 없는 게 세계적 규약이고 상식이다. 재산권료를 지불하는 건 구상나무를 역수입할 때가 아니라, 성탄 트리용으로 선발한 구상나무 품종을 수입할 경우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구상나무를 ‘성탄 트리의 원조’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이야기다. 성탄절에 나무에 갖가지 장식을 거는 풍습은 오래 전부터 서구인들의 전통 문화 가운데 하나이지만 구상나무가 그들에게 알려진 것은 100년도 채 안 됐다. 구상나무 품종을 선발하기 전에도 서구에서는 성탄절 즈음이면 전나무와 가문비나무에 여러 장식을 해서 ‘성탄 트리’로 이용했다. 구상나무가 성탄 트리의 원조일 수 없다.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지만 우리 토종인 구상나무는 이제 세계인들이 성탄 트리로 환영하는 나무가 됐다. 우리 토종 나무를 세계인의 축제 문화에 적용할 만한 식물 관련 기술 발전이 서구에 비해 너무 늦었다는 건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성탄절 장식으로 많이 활용하는 아름다운 나무가 우리 토종나무에서 유래됐다는 건 여전한 우리의 자부심이다. 또 그 많은 성탄 트리용 나무 가운데에 가장 강한 유전자를 가진 기본종이 바로 우리 땅에서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근거다. 선발한 품종의 유전자는 기본종의 유전자만큼 강하지 않고, 언젠가는 가장 강한 유전자를 가진 기본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성탄절 축제를 즐기며 성탄 트리용으로 구상나무를 찾는 세계인들의 관심은 구상나무 기본종에 쏠리게 되고, 이는 곧 구상나무의 첫 발견지인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마냥 즐기기에는 문제가 있다. 구상나무가 우리 땅에서도 차츰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구상나무 고사 현상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지리산 덕유산은 물론이고, 한라산에서도 집단 고사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백록담 부근에 형성된 구상나무 군락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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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는 그야말로 참혹한 상태다. 1200m 이상의 고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구상나무의 상태는 놀라울 지경이다. 이미 오래 전에 마지막 한 잎까지 덜어내고, 앙상한 뼈대만 남긴 고사목들이 줄을 이었다. 고사목은 한두 그루가 아니라, 아예 군락을 이뤘다. 해발 1400m 고지 위쪽에서는 살아있는 구상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구상나무 고사목의 묘지라고 해도 될 만큼 상황은 참혹하다. ‘멸종 위기’를 운운하는 게 과장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이 같은 구상나무의 생육 위기를 개선할 뾰족한 방법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구상나무가 죽어가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세심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대로 이 땅의 기후변화가 이어진다면 우리 토종 생물학적 자원으로 재산권을 행사할 천금같은 기회는 한갓되이 스러질 수밖에 없다.


구상나무와 그 유전자를 잘 지키는 일은 우리 생물학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일 뿐 아니라, 우리가 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 뜨거워지는 한반도의 기후에서 신음하는 구상나무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고 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이 땅에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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