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폭우와 폭염, 엎친 데 덮친 격 입력 : 2022.07.12 03:00 수정 : 2022.07.12 …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7-14 21:50:24    조회 : 105회    댓글: 0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폭우와 폭염, 엎친 데 덮친 격

다음주에 또 폭염과 폭우가 올 것이라고 한다. 복합재해의 불씨가 댕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예민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지난봄에 산불이 크게 났던 지역들은 이번 폭우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폭염도 마찬가지다
복합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한다. 함께 논의하면 복합재해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
 

지난주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완전히 썩어버린 농작물에 대한 TV 뉴스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고 풍작을 기원하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농부들의 마음은 나보다 더 힘들겠지만, 괜히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내가 제대로 연구를 안 해서 그런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바로 이 폭염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해가 갈수록 온실가스 증가에 따라 강력해지는 폭염의 심각성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해왔다. 그런데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기후변화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여전히 과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침 출근길부터 피부를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폭염, 이것이 기후변화의 증거이며 기후위기의 현재라고 믿으면 된다. 모든 것이 타버리기 전에 믿어야 한다. 이미 폭염은 우리에게 충분히 기후위기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눈치 없는 사람이 모를 뿐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기후변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왜 요즘 갑자기 기후위기라는 말을 많이 쓸까라고 궁금해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1980년대는 주로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많이 썼고, 1990년대부터 지구온난화보다는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더 많이 써오다가 2020년 이후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용어의 흐름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지구온난화는 말 그대로 보면 “지구가 따뜻해진다”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구?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구온난화라는 용어가 크게 히트 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지구온난화도 기후변화의 한 부분이지만 1990년대 이후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지구온난화보다는 인지도가 조금 올라갔다. 사람들이 기온, 강수량 등의 변화를 조금씩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우리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 같다. 게다가 변화라는 단어를 통해 많은 의미를 전달하며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들어 많이 쓰이고 있는 기후위기라는 용어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기온과 강수량의 양적 변화를 넘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간간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2020년 153개국 1만1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를 통해 내놓은 성명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기후위기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1만1000명이라는 숫자의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짧게는 몇년 길게는 몇십년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적어도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동시다발적 극한기후로 복합재해 

결국 시대별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기후위기로 주요 용어가 바뀌는 과정을 돌아보면,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서 지구의 문제로 치부하던 일들이 나의 일이 될 만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 탄소중립을 만들자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위기의 위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2022년의 반을 겨우 지난 시점이지만 올해는 정말 기후위기의 위력을 세삼 실감하고 있다. 올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해안 산불을 시작으로 여름이 무르익기도 전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갑자기 단숨에 300㎜의 비를 퍼붓고, 또다시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후위기의 특징인 복합재해(complex hazards)이다. 근래 나타나는 가뭄, 폭우, 폭염 등의 극한기후현상(extreme climate)은 하나의 현상만 특정 시점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극한기후현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타나거나 동시에 여러 개의 현상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연속적인 또는 동시다발로 나타나는 극한기후현상으로 인한 재해를 복합재해라 정의하고 있다. 급격한 폭우를 통해 일차적인 피해를 입은 농작물이 폭염에 노출되어 더 이상 생물이 아닌 무생물로 변하게 만든 힘, 그것이 복합재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재해는 단순히 농작물의 생태학적 피해를 넘어 농작물의 공급량 부족으로 인해 시장경제에 영향을 끼치고, 내 주머니 경제까지 위협할 수 있다. 올봄 대형 산불의 피해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동해안 지역에 강한 집중호우가 닥치면 토사유실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하고 주변 민가에 산불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만약 장마가 완전히 끝나고 폭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물이 없는 지역의 땅은 마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땅속의 물인 토양수분(soil moisture)이 마르기 시작하면 땅이 황폐화되는 것을 넘어 사막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물이 담겨 있던 저수지가 바싹 말라버리면 그때부터는 저수지 바닥에 있던 유기물이 썩고 탄소를 배출하는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둔갑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들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나타났던 복합재해 현상들이다.

예측 어려우니 모니터링 잘해야 

과거라고 말하긴 조금 애매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폭염, 가뭄, 폭우, 한파 등 하나의 극한기후현상만 잘 예측하고 대응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가 아닌 복합재해를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기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사실 극한기후현상은 평균이 아닌 말 그대로 극한값이라 하나의 현상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극한값의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극한기후현상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극한기후현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복합재해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일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보다도 몇만 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가도 예측은 어렵겠지만, 극한기후현상의 메커니즘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지구시스템의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변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방정식을 풀고 있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컴퓨터가 있더라도, 아무리 똑똑한 과학자가 있더라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측이 어렵다면 결국 우리는 현재를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덮치기 전에 막을 수 있게, 하나의 극한기후현상이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재해의 가능성을 빠르게 진단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극한기후현상에 관여하는 기후시스템(인간-대기-해양-식생-토양-하천)의 개별 요소 각각에 대한 모니터링 및 요소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진단을 빠르게 해야 한다. 폭염이라는 기온의 극한값(아주 높은 온도)이 발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반응, 바람의 반응, 생태계의 반응, 토양의 반응 등 그리고 인간과 식생의 상호작용, 대기와 토양의 상호작용, 해양과 육상의 상호작용 등을 즉각적으로 분석하고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폭염이 아닌, 폭우도 마찬가지다. 개별 극한기후현상은 복합재해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모니터링되고 즉각적으로 진단되어야 한다.

다음주에 또 폭염과 폭우가 올 것이라고 한다. 복합재해의 불씨가 댕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제발 불씨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럼 이제 우리 모두는 예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난봄에 산불이 크게 났던 지역들은 이번 폭우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200㎜ 정도 비가 와야 피해가 발생했다면, 어쩌면 지금은 반대로 100㎜, 50㎜만 와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물을 빨아들여줄 나무와 풀이 없기 때문이다. 폭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폭염이 지속될 때와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올 때는 피해 양상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복합재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 정도 전문가는 충분히 있으니까. 함께 논의하면 복합재해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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