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생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해설] 6. 서론과 1장 ⑥

작성자 : 마태오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01 20:13:48    조회 : 290회    댓글: 0

지구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 부족과 왜곡된 믿음, 생태적 부채의식과 차별화된 책임감 부재로


회칙은 1장에서 현재 우리의 ‘공동 가정’에서 목격할 수 있는 ‘증후군’을 소개하고 있다. 회칙은 자연(하늘과 땅과 물)과 사회에서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사태’들을 소개한다. 그 범위를 넓혀 마지막으로 ‘지구촌 차원의 불평등’(48-52항)을 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이와 관련하여 회칙은 불편한 모습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인간과 사회와 환경의 타락은 서로 결부되어 있으며, 그 타락의 대가를 수십 억에 달하는 “이 행성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48항)이 희생과 고통으로 치르는데도, 그에 대한 인류의 인식은 너무나 미미하다. 회칙은 “배제된 이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국제 정치적 논의”에서 마지못해 다루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회의를 다 끝내고 회의실을 정리할 때 불태워 버릴 장작더미의 “맨 아래 처박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개탄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회칙은 그 원인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는 많은 전문가들과 의견 작성자들과 소통 매체들과 권력 중추들이, 배제된 이들의 문제를 직접 접촉할 일이 거의 없는 부유한 도시 지역에 있다는 사실, 즉 사회적 약자와 멀리 벗어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그들은 안락하게 삽니다. 그들은…즉 세상 인구의 대다수가 도달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에서 [모든 문제를] 추론합니다”(49항).

 

2. 회칙은 ‘지구촌 불평등’ 문제를 대하면서 ‘소수의 사람’이 “문제들을 직시하기를 거절하는 방식”과 “현재의 분배 모델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 행성은 소수의 사람이 소비한 후 생긴 폐기물조차 다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자기들만…소비할 권리(the right to consume)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50항).

 

3. 회칙은 우리가 거의 생각해보지 못한 개념, ‘생태적 부채’와 ‘차별화된 책임’을 소개한다. ‘생태적 부채’와 관련해서는 아파레시다 문헌(2007년 브라질 아파레시다에서 열린 제5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 채택한 문헌)을 인용한, 다음 내용만 소개해도 금세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업들은 발전된 나라들 혹은 소위 제1세계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여기서 합니다. 그 기업들이 철수한 다음에 남겨놓는 것은 실직, 버려진 마을들, 매장 자원의 고갈, 산림 벌채, 농업과 지역 목축업의 황폐화, 오렴된 강…따위와 같은 막대한 인간적 환경적 빚들뿐입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그런 식으로” 자본을 늘립니다(51항).

‘차별화된 책임’을 회칙은 미국 주교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흔히 보다 더 힘 있는 이해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토의에서,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무너지기 쉬운 사람의 요구”에 더 많이 주목하는 것(52항)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문제’를 보자. 첫째, 지도자들의 모습을 본다. 사회적 약자와 물리적 접촉을 하고 있는가? 둘째, 도시와 비도시 사이의 심각한 불평등을 본다. 도시 시민이 배출한 생활 쓰레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시 시민과 산업 분야에서 소비하는 전력은 어디에서 생산되며, 어느 지역을 거쳐서 오는가? 셋째, 성장은 ‘막대한 인간적 환경적 빚’을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에 떠맡기는 것은 아닌가? 마지막으로 ‘힘 있는 이해집단’의 몫만 불리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초주검이 되어 내버려진 이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와 레위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 하신다. 물론 우리의 삶과 사회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으면, 사마리아인처럼 가서 그렇게 해야 한다(루카 10,29-3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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