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11. 제2장 - 3 우주의 신비

작성자 : 마태오    작성일시 : 작성일2015-09-07 14:30:57    조회 : 304회    댓글: 0

인간 중심주의 극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가족으로 봐야


III. 우주의 신비(76-83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성찰할 수 있다.

 

1. 창조(삼라만상)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계획과 관계가 있는 실재이기에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물을 이용 대상으로만 삼을 것인지,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을 발견할 이웃으로 볼 것인지, 인간의 태도에 있어,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은 훌륭한 길을 제시한다(76-77항).

2. 그러면서도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은 자연을 ‘탈 신화화’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인간은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상이 갖는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능력을 계발할 의무”를 갖는다. 이 책임과 의무는 ‘무제한의 물질적 진보’라는 근대의 신화와 양립할 수 없다(78항).

3. 인간은 자유롭게 지성을 적용하여 역사에서 자유와 성장과 구원과 사랑을 열매 맺을 수도, 타락과 상호 파괴를 향해 치달을 수도 있다. 이는 ‘개방되고 상호 소통하는 체계들로 되어 있는 우주관’을 전제한다(79항).

이는 동시에 오늘날 인류가 가고 있는 길이 생명을 향한 길인지 죽음을 향한 길인지 진지하게 물을 것을 요청한다.

4. 발전이 필요한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악들이나 위험들이나 고통”을 마치 “해산의 진통”으로 삼아, 당신 스스로를 제한하시면서 동시에 인간의 협력을 이끌어내시는 분이시다(80항).

여기서 두 가지 정도를 성찰하게 된다. 하나는 세상의 악들과 위험들과 고통 앞에서 보이는 교회의 패배주의가 그 하나이며, 모든 인간을 타자화시키는 자기 중심주의가 다른 하나다.

5. 살아 있는 다른 존재들을 인간이 임의로 지배할 수 있는 객체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본다면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되며,…조화와 정의와 형제애와 평화라는 이상”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82항). 인간의 참된 성소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지 “무책임하게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인이 성찰할 것 하나는, 신앙의 지나친 개인주의화 및 내재화라 할 수 있다. 사회와 역사와 미래보다는 현재의 자신의 마음(정신) 상태로 신앙을 제한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둘째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승자 독식’ 현상이다. 이를 우리는 ‘무제한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중립적 용어로 그 악을 은폐한다. 셋째 모든 피조물을 무책임하게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현상인데, 우리는 이를 언제나 ‘성장’이라고 포장하여 강요한다.

 

“모든 피조물은 초월적 충만함(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하나의 공동 목적지, 즉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83항). 이 여정에서 우리 인간은 여정의 ‘표지’이며 생명의 ‘샘물’이 되라고 거룩한 부름을 받았다. 이는 마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곧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 중인 인류의 표지가 되어야 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론을 상기시킨다.

 

IV. 창조의 조화 안에 있는 각 피조물의 메시지(84-88항)에서 성찰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심지어 미래에 존재할 그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일구신 ‘공동의 가정’(home)의 ‘한 가족’(family)인 셈이다. 다수성과 다양성을 전제하는 이 가족의 각 구성원은 그 나름의 자리와 개성과 가치를 지닌다(86항 참조). 이는 흔히 ‘다수성’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으로 구별하려는 우리의 태도와 ‘다양성’과 ‘차이’를 곧잘 차별로 환원시키려는 우리의 태도를 경계한다.

2. 게다가 이 다양성과 다수성은 모든 피조물이 상호 의존하고 보완하며 서로에게 기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 관계 속에서 각 사물이 지닌 의미와 중요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동시에 “무진장한 하느님의 부유함”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86항).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주기를 바라신 가르침(메시지)”(85항)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의 이 메시지와 현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생태적 덕들(the ecological virtues)을 계발하는 것”(88항)이다. 그 덕으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창조 안에 그 나름 고유하고 적절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이는 소극적으로는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 현존의 자리로 인정함으로써 ‘우주적(보편적) 친교’의 길로 나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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