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16.

작성자 : 마태오    작성일시 : 작성일2015-10-25 09:57:25    조회 : 350회    댓글: 0

제3장 - 생태적 재앙의 근원들


④ 근대의 인간중심주의가 초래한 재앙과 그 결과 - 생태 재앙의 뿌리 : 왜곡된 인간 본성(인성), 왜곡된 인간관계(사회적 차원)와 하느님과의 관계(초월적 차원)

 

교종은 ‘일단 멈춰서’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맑은 정신으로 바라보자고 초대한다. 하늘과 땅과 뭇 생명의 절규를 듣자고 한다. 사람들 삶의 질이 추락하고 사회가 고장 나며, 전 지구 차원의 불평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처를 고통스럽게 보자고 한다(제1장 참조).

이 절규와 상처(증후군, symptoms)를 불러온 병은 지난 2세기 동안 사람과 사회와 정치와 경제가 맹목으로 뒤쫓은 ‘무차별적이며 일차원적인 기술주의 패러다임’이다. ‘인간’과 ‘윤리’, ‘양심’과 ‘도덕’을 퇴출시킨 과학 및 과학 기술과 경제의 동맹이 ‘만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스러운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업적에 비하면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기껏해야 간단히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부작용’쯤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회칙은 병뿐만 아니라 증후군마저도 ‘치명’이라고 고발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자연과 저개발 지역의 뭇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과학)기술주의 패러다임’과 함께 회칙이 생태 재앙을 불러온 또 다른 인간적 뿌리로 제시한 것이 ‘근대의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다. 이는 세상 안에서 인간의 ‘참된 자리’를 잃어버리게 했다. 대신 자신만을 중심에 놓아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공간을 자의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세상이 본래부터 갖고 있던 존엄함’을 훼손했다. 게다가 이는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 차원의 유대를 약화해버렸다. 마침내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실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절대적 지배행위”를 하게 만들었다(117항).

회칙은 이 ‘과도한 인간중심주의’의 배경에 교회의 책임도 있음을 밝힌다.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부적절하게 제시한 것이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불러왔다고 고백한다(116항 참조).

교종은 지난해 이 땅을 방문하여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교회의 사목이 공리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 태도를 갖게 될 유혹을 경계한다. 교종은 또 사목 활동가들의 ‘극도의 개인주의’를 ‘악’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지난 호에서 교종과 회칙이 교회 안팎으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왜곡된 인간중심주의의 겉모습이라 할 수 있는 극도의 개인주의와 공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주장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절대적 지배’의 자리에서 ‘초발전’의 삶을 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49항 참조).

‘과도한 인간중심주의’가 불러온 현상은 두 극단이 공존하는 ‘일종의 지속적 정신 분열’이다. 한 극단에는 “보다 더 작은 존재들, 즉 사회적 약자, 인간의 한 태아, 장애를 갖고 있는 한 사람, 자연 자체에 본래부터 있는 가치들을 전혀 보지 않는 기술주의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다른 극단에는, 앞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들한테 있는 특별한 가치를 전혀 보지 않는 태도”(118항)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 본성(인성, humanity) 자체의 쇄신’이 대두된다. 회칙은 ‘쇄신된 인성’이 결여된 인간중심주의를 ‘잘못 지도된(길을 잘못 들어선) 인간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불균형을 더할 것이며, 사람들의 고유한 역량(지성, 의지, 자유, 책임)을 존중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118항 참조).

회칙은 ‘상호 인격적 관계의 쇄신’, 곧 ‘사회적 차원’의 쇄신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만일 오늘날 생태 재앙이 근대성의 위기, 즉 윤리적, 문화적, 정신적 위기를 드러낸 하나의 작은 표지에 불과한 것이라면, 근본적인 모든 인간관계를 치유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환경과 맺은 우리의 관계를 치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향한 개방성이라는 ‘초월적 차원’에서의 쇄신은 말할 것도 없다(119항). 회칙은 이 ‘인성 자체’와 관계의 사회적 차원과 초월적 차원의 쇄신을 위한 길을 제4, 5, 6장에서 제안하고 있다.

인간의 ‘참된 자리’는 ‘무엇이든 누구든’ 폭압적으로 지배하려는 세상과 독립된 ‘자기중심(self-centeredness)’에 있지 않다. 회칙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참된 자리’를 되찾자고, 더 나아가 “새로운 종합”(121항)을 개발하자고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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