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22>

작성자 : 마태오    작성일시 : 작성일2015-12-19 20:33:22    조회 : 383회    댓글: 0

제5장 - 접근법과 행동 방식 ①인류 역사에서 가장 무책임한 시대로 기억될 것인가!


“시민 사회가 기울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환경에 관한 정상회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정상들에게 정치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166항)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이 땅을 찾으셨을 때,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것을 두고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문제를 삼으려는 분들이 있었다. 참 점잖은 ‘이의 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교종께서도 점잖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대꾸하셨다.

2년 전 교종의 권고 「복음의 기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리고 이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발표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보인 격렬한 반발에 비하면 교종의 ‘노란 리본’은 사실 ‘사건’도 아니다. ‘공산주의자’, ‘막시스트’ ‘레닌주의의 아류’, 혹은 ‘경제의 문외한이 어설프게 쓴 책’ 따위의 비난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신성시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비난이다. 마침내 회칙이 발표된 바로 그 날 미국 공화당은 아예 대변인을 내세워 발 빠르게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회칙과 교종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표현의 수위는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도 일부 인사들은 나름 ‘점잖게’ 교종의 태도와 권고와 회칙을 언급하며, 그 의미를 축소 혹은 왜곡하려 했다.

여기서 정말 궁금함이 생긴다. 왜 교종의 발언과 권고와 회칙을 비난할까? 독자께서 그의 권고와 회칙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보면 그 답을 금세 찾아낼 수 있다. 교종의 행보로 보아 ‘폭압의 권력’을 탐하는 것 같지도, 그렇다고 ‘부의 축적’에 눈이 먼 것 같지도 않다. 그 행보가 ‘사회적 약자’ 편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면 교종이 어느 자리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지 분명해진다. 그런데다가 교종은 지금의 경제와 금융 체제의 부작용과 미흡함을 문제 삼으며, 제발 제대로 된 ‘처방’을 내려주십사고 품위 있게 간청하지 않는다. 대신 교종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그 체제(system) 자체에, 그리고 그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데올로기 자체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도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말이다. 지금의 경제 체제, 시장과 금융투기의 절대 자율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실현시켜주기 위해 충실히 봉사함으로써 사람과 사회와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경제와 정치의 부도덕함과 무모함과 무능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다. 만일 외계인이 있다면, 자멸과 상호파괴의 길로치닫는 인류의 오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라고까지 한다.

회칙은 그 부도덕함과 무모함과 무능함(회칙의 3장)이 불러온 재앙들(1장)은 통합의 생태(4장)와 철저하게 반한다고 밝힌다. 물론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도 분명히 반한다(2장).

이제 교종은 회칙 제5장에서 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그리고 그 진단과 처방을 찾기 위한 ‘대화’와 ‘행동’ 노선을 제시하려 한다. 제5장은 의미심장한 진단을 내놓으면서 시작한다. “많은 어려움이 지난 세기 중반에 시작되었습니다”(164항). ‘지난 세기 중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말한다. 인류는 급속한 변화와 심각한 불균형에 내몰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1965년 12월 8일)은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회칙에서 진단하는 내용으로 말한다면,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부합하는 윤리와 도덕의 부재라는 불균형일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미국을 한 축으로 하는 서방세계와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동방세계 사이의 냉전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다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지구 남반부 지역을 식민 지배함으로써 급속히 발전한 선진 국가들과 막 독립한 남반부의 수많은 나라들 사이의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을 더할 수 있다.

맑은 정신으로 보면, 그 심각한 불균형의 문제를 못 볼 수가 없다. 교종은 그 부정적 결과들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특정 생활양식과 생산소비 모델”이 낳았다고 밝힌다. 게다가 “그 해결책들이 단순하게 몇 나라만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아리라, 반드시 지구촌 차원의 전망에서 제시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힌다(164항 참조).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 결과를 안기고 있는 특정 ‘생활양식과 생산소비 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구촌 차원의 전망’을 훼방 놓고 ‘자기 나라만의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나라는 어느 나라들일까?

교종은 그동안 환경에 관한 현안에 대해 괄목할 만한 대중적 토론과 시민으로부터의 헌신적이며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고 긍정한다. 그렇지만 “정치와 기업(경제)의 영역에서는 그 도전의 급박성을 놓고 볼 때, 그 대응방식에 있어서나 시의성에 있어서도 훨씬 뒤쳐졌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말한다. 정치와 경제가 이제라도 올바른 몫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산업화 이후의 시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무책임한 시대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165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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