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해설 29- 정치가 없는 경제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2-07 20:05:52    조회 : 304회    댓글: 0


[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29.

정치가 없는 경제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2016. 02. 07발행 [1351호]

 


정치가 없는 경제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지역에서는 국가가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아서, 일부 기업 그룹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시혜자의 가면을 쓰고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이 특정 규율로부터 면제된다고 여깁니다”(197항).

 

교종은 경제 분야에서 ‘수익 극대화의 원리’가 “생산을 증대시키는 동안 앞으로 치를지도 모를 비용에 대해, 곧 미래 자원 및 환경의 건강 관련 비용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비윤리적인 경제 개념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하며 기업 활동의 윤리성 회복을 강조한다. 지금 세대의 우리가 자원을 다 써 버린 대가로 지불해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을 다른 민족이나 미래 세대가 알아내고 지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시장이든 국가든 자원을 할당하고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195항).

이어서 회칙은 인간 완성을 위해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189항), 건강한 정치의 역할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허약한 정치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에 종속되거나 아예 경제와 무관한 정치다. 그리되면 국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일부 경제 영역들은 더 큰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재앙과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 경제적 접근 외의 다른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며,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일에도 관심을 두지 못할 것이다(196항). 둘째,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치다. 그리되면 건전한 공공 정책들을 법제화하는 일이 보류되거나 일부 기업 그룹들의 사악한 논리를 무너뜨릴 수 없게 된다(197항). 셋째, 빈곤과 환경의 타락이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경제에 떠넘기고 대신 자기들의 권력을 움켜쥐거나 확장시키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다(198항).

건강한 정치란 우선, 사회의 각 수준에 현존하는 역량들을 개발할 자유를 부여하며, 공동선에 대한 보다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보조성의 원리를 따르는 정치다. 건강한 정치는 현존하는 재앙과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적 접근 외에도 다양한 접근 방식을 함께 모색할 것이며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196항). 둘째,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전략을 세우기 위해, 멀리 내다보며 새롭고 통합적이며 학제 간 제휴하는 자세로 지금까지의 ‘과정 전체’를 재고할 용기를 가진 정치다(197항). 셋째, 공동선을 향해 경제와 대화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식들을 찾는 정치다(108항).

정치와 경제는 그 목적도 토대도 인간이며 사회다. 정치와 경제는 궁극적으로 참된 인간화와 참된 사회화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며 수단이다. 이를 위해 각각 윤리적인 경제와 건강한 정치가 요구되며 그 상호작용의 형식들도 찾아내야 한다. 그 실패는 금융 소득에만 관심을 두는 경제와 권력 쟁취와 확장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를 키울 것이며, 그 대가는 무수한 사회적 약자의 양산이며 고통이다(198항). 이를 교회의 사회교리는 ‘죄의 구조들’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뜻과 상반되고 이웃의 선익에 위배되는 행동과 태도들, 또 그러한 행동들에서 비롯되는 구조들은 오늘날 두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이득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며, 다른 편에서는 자기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19항).

교종은 정치와 경제가 자기들 각각의 실수를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 잘못이란 일부 정치 영역에서 보이는 경제에 종속되어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치이며, 일부 경제 영역에서 보이는 비윤리적이며 무책임하며 사악한 논리에 사로잡힌 경제를 말한다. 교종은 동시에 건강한 정치와 윤리적인 경제가 공동선을 향해 상호작용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198항).

우리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말이 있다. 규제 완화, 규제 철폐, 규제 개혁 따위의 말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시장에 너무 많은 규제가 있어서 기업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발전하지 못하므로, 과감하게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경제적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우리의 정치 수준이 한참 뒤떨어져 그 역량을 뒷받침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마침내 정치의 목적이 마치 경제에 봉사하는 데 있다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사람과 사회와 자연 곧 생태를 보호하고 개선하는 그 일은 오로지 지금의 경제(시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시장과 경제를 섬기는 것이 정치의 몫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이는 시장 혹은 경제의 절대 자율이 만능의 신이라는 믿음과 마찬가지다. 가히 경제의 독재라 부를만하다. 정치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할 때 현실 세계에서 이를 견제할 힘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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