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 해설 33 그리스도교 영성, 기쁨과 평화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3-15 11:37:27    조회 : 366회    댓글: 1

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3. 제6장 - 생태 교육과 영성 ③그리스도교 영성, 기쁨과 평화

2016. 03. 13발행 [1355호] 홈 > 평화신문 > 사목영성 > 교황 생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해설

“실재 안에서(in reality) 매 순간을 보다 더 기쁘게 잘 사는 사람들은… 적은 것을 소유하더라도 많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 [소유보다는] 다른 즐거움을 계발하고, 형제적 만남의 만족, 봉사의 만족, 자기들의 은사 개발의 만족, 음악과 미술의 만족, 자연과 접촉의 만족, 기도의 만족을 찾을 때 그렇습니다”(223항).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곧 마음의 태도에 있어서, 대안의 관점을 제안하며,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생활양식을 권장한다(222, 226항).

회칙은 “지난 세기가 절제와 겸손을 호의적으로 여기지 않은 시대”였다고 단언한다. 근현대의 소비주의 패러다임은 ‘지배의 역학’을 강화하고 ‘쾌락의 축적’만을 강요하고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소비재’(222항) 앞에서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찾아 다른 곳에 가서 기웃거리는 그런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223항). 사람들은 자신을 자율적인 존재로 여기며 하느님을 배제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여, “모든 것을 무한으로 [소유하고] 지배”하려 했지만, 결국 ‘집착과 걱정’(223항)에 사로잡히고 ‘환경의 불균형들을 포함한 다수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224항).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두르는 가운데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거칠게” 다루며, “피상적 소비자, 공격적 소비자, 그리고 충동적 소비자로 만드는 그런 불건전한 고뇌”에 빠져, 기쁨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226항).

그렇다면 회칙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이 제안하는 ‘대안의 관점’,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생활양식’, 그리고 ‘마음의 태도’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다 더 적은 것이 보다 더 낫다’(less is more)는 확신을 갖고, 각각의 사물과(each thing) 매 순간을(each moment) 소중히 여기는 삶이다. 회칙은 이를 “중용과 작은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성장”이라고, 곧 ‘소박함에로 복귀하는’(222항) 삶이며 [집착과 걱정과 고뇌로부터] ‘해방하는 절제’(223항)의 삶이라고 한다. 이는 3장에서 다룬 ‘획일적이며 일차원적 패러다임’을 쫓는 고삐 풀린 소비주의의 극복을 위한 대안의 태도라 할 만하다.

둘째, 그리스도교 영성은 생태계들의 통합성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인간 생활(생명)의 통합성에 대해서, 즉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통일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대화를 제안한다(224항). 이는 3장에서 다룬 ‘과도한 인간중심주의’와 ‘실천적 상대주의’의 극복을 위한 대안의 태도, 좀 더 구체적으로는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다룬 ‘배제’를 토대로 하는 ‘경제체계’ 혹은 ‘돈을 우상화하는 새로운 경제독재’의 극복을 위한 대안의 태도라 할 만하다.

셋째, 그리스도교 영성은 ‘경탄할 역량과 함께 균형 잡힌 생활양식에 반영되는 내적인 평화의 회복을 제안한다. 진정한 내적 평화는 생태와 공동선을 돌보는 [외적] 평화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25항). 이처럼 그리스도교 영성이 제안하는 “통합의 생태에는 창조와(삼라만상과) 고요한 조화를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태도, 우리의 생활양식과 이상들을 성찰하는 태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며 우리를 둘러싸고 계시는 창조주를 관상하는 태도”가 포함된다.

교종은 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완벽한 모범을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우리는 [지금] ‘마음의 태도’에 대해서, ‘고요한 정중함’으로 생명(생활)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서, 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 앞에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매 순간’을 우리에게 철저하게 살라고 주신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의 꽃과 하늘의 새를 관상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셨을 때, 혹은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마르 10,21)는 말씀처럼 부자 청년을 바라보시며 그의 불안함을 알아보셨을 때, 바로 이 [마음의] 태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 앞에 그리고 모든 것 앞에(to everyone and to everything) 완전하게 현존하셨습니다”(226항).

우리의 영성과 교회의 태도를 성찰한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내세워,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과 무관심을 정당화하지는 않는가?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라는 ‘조건절’(條件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말이다(1 코린 9, 22 참조).

 
 

댓글목록

작성자: 헬레나08님     작성일시:

지난 3월7일 시화바오로성당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4월 나눔 도서가 '찬미받으소서'입니다. 제6장 202항부터~246항까지 더 집중해서 읽고 나누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