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받으소서 해설 - 37 피조물들의 절규에 응답하고 행동하라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4-19 12:04:28    조회 : 419회    댓글: 0

 

피조물들의 절규에 응답하고 행동하라

[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7·끝. 사회회칙 「찬미받으소서」
 
2016. 04. 10발행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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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7·끝. 사회회칙 「찬미받으소서」

길을 나서며…

우연히 어느 방송인의 이야기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호소, ‘쉼’의 영성을 들었다. 그는 ‘휴식’이라는 한자어 ‘休息’을 풀어주었다. ‘休’는 나무 옆의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며, ‘息’은 ‘나’와 ‘마음’의 관계 곧 ‘나’의 ‘마음’을 살피는 것, 혹은 ‘나’를 ‘마음’으로 헤아려 살피는 것을 형상화한 문자라는 설명이었다. 개인으로서든 공동체들로서든 우리에게는 그 ‘휴식’이 시급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었으며, 그 짧은 이야기가 마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요약하는 듯했다.

회칙은 ‘자기 파멸’과 ‘상호 파멸’의 무모함을 멈추자고 호소한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우리의 공동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맑은 정신으로 바라보자고 권한다. 그러면 하늘과 땅과 물과 벗에게서 들려오는 절규를 생생하게 들을 것이라고 한다. 곳곳에 ‘균열이 난 상처’를 또렷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회칙은 기후 변화와 대기 오염의 두려움, 자원(물)의 빈곤과 뭇 생명의 절박함, 오물 덩어리로 변하는 이 행성의 비참함에 공감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와 똑같이 하느님을 닮은 이웃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고 있으며, 공동체가 얼마나 황폐하게 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불균형으로 휘청거리고 있는지를 깨닫고 행동(동행)하는 여정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회칙 제1장 참조). 이를 회칙은 ‘생태의 전환’의 길로 나서는 것이라 밝힌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회칙은 그 근본적 원인을 ‘인간’에게서 특히 ‘근대’의 인간관과 세계관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제자리 곧 이 세상에서의 ‘올바른 자리’에서 벗어난 근대의 ‘주체’ 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거기에 인간의 ‘창의력’이 더하여 ‘과학’과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그 오ㆍ남용과 함께 ‘경제’ 및 ‘금융’이 결탁하여 ‘진보의 신화’라는 ‘거짓’과 ‘무차별적이고 획일적인 패러다임’이 강고하게 구축되었다고 진단한다. ‘과도한’ 혹은 ‘폭압적 인간중심주의’와 ‘실천적 상대주의’(제3장 참조)는 왜곡된 개인주의와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의 가면을 쓰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새로운 사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교종은, 회칙에서 분명하게 밝히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주려 하지 않는다. 다만 ‘생태 재앙’이 제기하는 도전의 시급성과 광대함과 심각함을 자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응전과 지향이 필요하며(제4장), 그 길로서 모든 이의 정직하고 진실한 ‘대화의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길에 교회도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제5장). 참된 평화의 길을 구축하는 데 따라야 할 원칙들을 교종은 이미 자신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밝혔다. 물론 이 원칙들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복음적 근거를 갖는다. 첫째,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 이는 생태 전환의 과정 모색에 인내를 갖고 대화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일치는 갈등을 압도한다. 이는 갈등 요소(차이)를 생태 전환의 과정에 연결시키는 것을 요구한다. 셋째, 실재들은 관념들보다 위대하다. 이는 생태 전환의 과정에 개인으로서든 공동체로서든 구체적인 행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전체가 부분보다 위대하다. 이는 생태 전환을 위한 투신에 있어 다양성과 함께 그 조화의 중요함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다.

 

회칙은 인류의 생태 전환에 기여하는 것을 ‘사명’으로 밝히면서,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가장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공의회의 선언을 충실히 따른다. 이를 위해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는 건전한 영성과 교육이 요구되는데, 그 영성과 교육의 토대를 제2장 창조의 복음에서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강조한다. 그 만남은 ‘관상’의 태도를 불러올 것이다(제6장).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그림’ 하나가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년을 기념하며 교종은 1년을 ‘자비의 특별희년’으로 보내자고 우리를 초대하였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그림’에는 예수님의 어깨에 얹혀 있는 우리의 얼굴과 예수님의 얼굴은 겹쳐 있는데, 그 두 얼굴에는 눈이 세 개밖에 없다. 한 눈이 바로 예수님과 우리의 ‘공동의 눈’이다. ‘관상’이란 이 ‘공동의 눈’으로 ‘나’만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헤아리는 태도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관상’은 ‘생태 전환’에 대한 투신을 불러온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투신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사목 목표를 ‘쇄신과 정화’, ‘복음화’ 그리고 ‘대화’라고 선언했다. 교종은 복음과 보편 교회의 공의회 가르침에 따라 그 ‘사목’에 헌신한다. 말씀의 봉사자로서 교종이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교회의 쇄신을 가르쳤다면,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가장 시급한 ‘복음화’의 과제로서 ‘생태의 전환’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쇄신과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해 거침없이 대화의 길로 나서고 있다. “당면한 ‘실재’를 자세히 그리고 완전히 분석하는 것이 교종의 임무는 아니지만, 저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 시대 정신을 식별하고 확인하며, 선한 정신의 움직임을 선택하고 악한 정신의 움직임을 거부하기를 … 권고합니다”(「복음의 기쁨」 51항).


이번 호로 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을 마칩니다. 해설해 주신 박동호 신부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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