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덜 없어서' 더러운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1-10 20:00:10    조회 : 196회    댓글: 0

 

[사유와 성찰]‘덜 없어서’ 더러운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입력 : 2018.01.05 21:18:01 수정 : 2018.01.05 21:19:3

[사유와 성찰]‘덜 없어서’ 더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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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쓸고 닦고, 사르고 치울 일이 많다. 아니, 쓸고 닦고 사르고 치우는 게 매일의 과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상은 금방 질척질척 너저분해지고 만다. 그래서 방은 걸레로 훔치고, 마당은 빗자루로 쓴다.


하루하루 쓸고 훔치면서 나름 터득하게 된 어쭙잖은 생활의 발견 몇 가지. 첫째,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는데 어쩌면 그렇게 치울 게 많이 나오는지 놀랍기만 하다. 몸에서 떨어지는 것들과 몸이 지어내는 부스러기는 쉼이 없다. 사는 게 죄라는 말이 딱 맞다. 둘째, 눈은 얼굴이 아니라 손에 달려 있다. 손수 쓸고 닦아봐야 구석구석 뒹구는 먼지의 실체와 삶의 찌꺼기들을 마주하게 되지 그 전까지는 까맣게 모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비로소 보인다고? 빗자루를 들면 대번 비루한 현실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


셋째, 그런데 막상 모아놓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한 웅큼도 못 되는 것들이 나의 앉고 눕고 숨 쉬는 자리를 그렇게 더럽혔나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넷째, 치울 것 다 치우고 나면 사방이 새롭고 소중해진다. 흠집이 생겼거나 낡은 사물들조차 전혀 다른 얼굴로 환한 빛을 뿜는다. 쓸고 닦는 동안 마음이 가지런하고 환해져서 그렇다.


지난날 어리고 어리석은 나머지 우리가 더럽혀 놓은 것들을 한곳에 쌓아놓는다면 천하의 태산조차 높다고는 못할 것이다. “하느님, 너무 먹어서 싸고 쏟고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어머니가 기저귀를 빨 듯 저희의 더러운 것을 없이 하여 주소서.” 옛사람의 기도문이다. 어렸을 때는 탐(貪), 젊었을 때는 치(痴), 장년이 되면 진(瞋)이 문제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삼독에 빠지면 살(殺), 음(淫), 도(盜) 삼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삼독과 삼악을 뽑아버리기 전에는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이라고 하니 지(地)의 탐욕, 수(水)의 치정, 화(火)의 진예, 풍(風)의 거짓말을 없애 버릴 각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 비로 쓸고 물로 닦고 불로 살라 흙 속에 묻어 장사 지낸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몸에서 나오는 삼독삼악과 거짓말, 욕지거리, 아첨, 허튼수작은 죽어서도 고스란히 남는다. 육신이야 남의 손에 맡겨 묻을 수 있지만 이 청소만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 없앴는지, 덜 없앴는지 하는 문제가 나온다. 없애고 없애서 다 없도록 했다면 깨끗한 것이지만, 없애다가 그만두었다면 덜 없앤 것이므로 덜 없는 것, 더러운 것이다. 자고로 절대무(絶代無)라야 깨끗하고, 부분무(部分無)는 덜 없으니 더럽다.(유영모)

 

일각에서 “적폐청산 그만 좀 하자. 피곤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것 또한 삶의 자취요, ‘터 무늬’가 되지 않겠는가 싶을 것이다. 미안하게도 새해 벽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의 대대적인 열망은 그렇지 않다. 이른바 ‘적폐청산’의 목표가 그깟 미운 놈 몇몇을 손봐주자는 게 아니요, 여기저기 파헤쳐서 창피를 주자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다스가 누구의 것인지, 삼성이 왜 말을 사주고 사료 값을 댔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곪고 썩은 자리를 일일이 찾아서 고름을 짜내려는 까닭은 사람 못살게 구는 악의 궤적을 낱낱이 밝혀내기 위함이며, 그래서 탐욕과 치정과 폭력의 시스템에 무한히 전력을 제공하던 발전소를 해체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짓던 자들은 더 큰 죄를 모의할 테고, 천신만고 끝에 기사회생을 꿈꾸게 된 사람들은 죽음의 골짜기로 되돌아가야 한다.


모처럼 큰맘 먹고 시작한 대청소이니 ‘깨’버릴 것 깨고, ‘끝’낼 것 끝내서 깨끗하게 만들자. 하다가 말면 더 무서운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성경에 집 안을 말끔히 치우고 정돈해 두었더니 떠나갔던 악령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돌아와 집주인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마태오 12,43~45). 무엇이 문제였을까? 치우긴 치웠으나 채울 것을 채우지 못해서 벌어진 사달이었다.


이참에 ‘좋다’와 ‘나쁘다’에 대해서도 똑똑히 해두자. 어느 때 좋다 하고, 어느 때 나쁘다고 하는가. 없을 것이 없고, 있을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다. 하나라도 없을 것이 있다거나 있을 것이 없다면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없앨 것을 없애야 함은 물론이고, 있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갖추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해는 짧고 길은 멀다. 고단한 일이지만 악조차 살려내야 하는 선의 운명이다.

 


새해 첫 주말, 진심으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자.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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